머리만 내놓고 쏙… 5분만에 땀 송골송골
침낭은 등산과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언제, 어디서든지 안전함과 아늑함을 제공해 주는 아이템이다. 남양주=신원건기자 laputa@donga.com 장소협조: 팔현캠프(경기 남양주시 오남읍) 장비협조: 영원무역
그는 극한의 빙벽을 정복하기 위해 히말라야와 알래스카 등을 찾아다니는 산악인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산악부에서 활동하며 산과 친숙하게 지내왔다. 어느덧 베테랑의 반열에 들어서 그이지만, 아직도 고교 3학년 때의 에피소드를 잊지 못한다.
“여름방학이었을 거예요. 산악부원들과 함께 며칠간 설악산에 머물며 훈련을 했죠. 그런데 비가 와서 가방이 다 흠뻑 젖어버렸어요. 가방에 넣어 뒀던 침낭도 물에 젖어 쓸 수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결국 모두가 오들오들 떨면서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 다음 날엔 너무나 힘들었죠. 제대로 산행을 할 수 없었어요. 산행을 할 때는 피로 해소를 위해 ‘잘 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러질 못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날씨가 조금 따뜻해졌다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기온이 체온보다 낮으면 사람은 언제나 저체온증에 걸릴 수 있다. 심지어 더운 여름이라고 해도 술이 깨거나 비를 많이 맞아 몸이 차가워지면 위험해질 수 있다. 침낭은 1박 이상을 하는 아웃도어 활동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 》
머미형은 후끈, 사각형은 쾌적
침낭은 크게 모양과 사용 시기에 따라 종류가 나뉜다. 두꺼운 동절기용 제품은 보통 한겨울과 늦가을, 초봄용이다. 4월 이후 날씨가 따뜻해진 뒤로는 하절기용이나 3계절용(겨울을 제외한 봄·여름·가을에 사용하는 제품) 침낭을 주로 쓴다.
19일 기자는 박희용 선수의 도움을 받아 직접 동절기용과 하절기용, 두 가지 침낭에 번갈아 들어가 봤다. 미라(mummy·머미)처럼 생긴 침낭 속에서는 지퍼를 닫기 전부터 하체가 후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5분 정도 들어가 있었을 뿐인데 머리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반면 하계용과 3계절용에 주로 쓰이는 사각형(세미렉형) 침낭에서는 몸이 쉽게 따뜻해지지 않았지만 공간이 넓어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침낭을 고를 때는 상표 근처에 붙어 있는 내한온도(침낭이 보온 효과를 낼 수 있는 최저 기온)를 꼭 확인해야 한다. 보통 하계용 제품의 내한온도는 영상 10도, 3계절용 침낭은 영하 7도 정도다. 동계용 침낭의 내한온도는 영하 20도∼영하 40도다. 김종원 네파 오토캠핑 담당 과장은 “보통 자기 몸보다 30cm 이상 긴 침낭을 골라야 편안하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아직 꽃샘추위가 남아 있는 3, 4월까지는 겨울용인 머미형 침낭이 좋다. 머미형은 다리 부분은 좁고 몸통으로 올라올수록 폭이 넓어지는 형태다. 모자처럼 생긴 윗부분이 머리까지 가려준다. 머리 부분의 끈을 최대한으로 줄이면 간신히 코와 입만 보일 정도다.
보온성이 좋은 머미형 제품은 추위로부터 몸을 빈틈없이 보호해 준다. 다운재킷처럼 구간을 나눠 오리털이나 거위털로 된 다운 충전재를 두툼하게 집어넣어 만든다. 필파워(다운 소재가 압축됐다가 원래 상태로 회복하는 정도를 나타난 수치)는 850 이상인 제품이 좋다. 좁은 배낭에 보관했다가 꺼내도 금방 제 모습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머미형은 사각형 침낭에 비해 내부 공간이 좁기 때문에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보온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박 선수는 “침낭 내부 공간이 넓다는 것은 내 체온으로 덥혀야 할 공간이 그만큼 넓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침낭과 함께 반드시 챙겨야 할 물건이 있으니 바로 매트리스다. 텐트 안이나 캠핑장 마룻바닥이라고 해도 매트리스는 필수다. 땅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아야 편안히 잘 수 있기 때문이다. 침낭의 보온 효과는 충전 소재가 공기를 머금은 상태에서 외부와 내부를 차단해 주기 때문에 생긴다. 몸이 충전 소재를 눌러 공기층이 없어지면 그만큼 보온 효과가 반감된다. 박희용 선수는 “몸에 눌려 압축된 부분은 그냥 천이 여러 겹 덧대어져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보온 성능을 기대할 수 없다”며 “따라서 반드시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깜빡하고 매트리스를 챙기지 못했다면? 박 선수는 “등산용 배낭을 비상용으로 이용하면 된다”고 귀띔했다. 요즘 등산용 배낭에는 모양을 유지하기 위한 프레임과 등을 보호하기 위한 쿠션이 부착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비상시에는 매트리스를 대체할 수 있다. 땅에 닿는 공간이 넓은 어깨부터 엉덩이에 이르는 공간에 빈 등산용 배낭을 깔면 된다. 그는 “빙벽을 오르다 잠시 침낭에 들어가 쉴 때면 급한 대로 등산용 가방에 두 다리를 넣고 몸의 온기를 유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 침낭의 천적은 습기… 다운소재, 입김만 젖어도 보온 ‘뚝’
습기를 주의하자
침낭은 습기에 약하다. 주로 폴리에스테르 재질로 만드는 합성섬유 제품은 상대적으로 물에 강한 편이지만 다운 소재 제품의 경우 물은 ‘천적’이다. 침낭이 물에 젖으면 보온 효과를 내 주는 공기층이 없어지기 때문에 완전히 마를 때까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박 선수가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히말라야에서 힘든 길을 가기 위해서는 짐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텐트도 가져가지 않고 정말 ‘얼어 죽지 않을’ 정도 크기의 침낭을 가져갑니다. 한번은 기온이 떨어지면서 생긴 이슬로 축축해진 침낭을 말리지 못하고 며칠이나 가지고 다닌 적이 있어요. 그러면 (침낭이) 압축된 상태에서 얼어버리기도 하죠. 그런 상태가 되면, 아무리 좋은 침낭이라도 그냥 보통 천 조각 정도의 역할밖에 못 합니다.”
다운 소재의 침낭은 심지어 숨을 쉴 때 나오는 입김에도 젖을 수 있다. 얼굴 일부만 빼꼼히 내놓고 잠을 자니까 괜찮다고? 실제로는 숨을 쉴 때 나온 습기가 침낭 안으로 파고들어 오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래서 머미형 침낭에는 목 아래로 습기가 파고들지 않도록 해 주는 가림막이 마련돼 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된다면 얼굴 위에 스웨터를 놓고 자는 방법도 있다. 얼굴을 통해 열이 빠져나가는 것과 습기가 생기는 것을 동시에 막아 준다.
흐리거나 습도가 높은 날에서 침낭을 사용하려면 커버를 사용해야 한다. 최창학 노스페이스 용품팀 부장은 “일반 비닐 커버는 투습이 되지 않기 때문에 고어텍스 소재 등으로 된 것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19일 서울 강북구 번동 노스페이스 아웃도어 문화센터 2층에서 박희용 선수로부터 침낭사용법을 배웠다. “침낭을 정리할 때는 바람을 잘 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최혁중기자 sajinman@donga.com
보통은 압축백에 넣어 보관하는데 이 방법은 장기간 보관에는 좋지 않다. 압축백은 침낭을 배낭에 넣을 때 부피를 줄이는 용도로만 쓰는 게 바람직하다. 침낭을 압축백에 너무 오래 넣어 두면 충전재가 복원력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또 습기가 많은 곳에 침낭을 넣어 두면 곰팡이가 생길 수 있다.
평상시 침낭을 보관할 때 가장 좋은 것은 접거나 구겨지지 않은 상태로 펼쳐 놓거나 옷걸이에 걸어 두는 방법이다. 침낭이 공간을 지나치게 많이 차지해 부담스럽다면 그물로 된 보관 가방에 넣어 두면 된다. 그물 가방은 압축백보다 크고 외부와 공기가 통하기 때문에 충전재가 습기에 상하거나 복원력이 사라질 우려가 적다.
침낭은 세탁을 자주 할 수 없기 때문에 평소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이나 캠핑장에서 사용한 다음에는 햇빛에 잠시 말린 다음 가방에 넣는 습관을 들이자. 세탁할 때는 다운 소재용의 연성 세제를 써야 한다. 원종민 코오롱등산학교 강사는 “원칙적으로 세탁을 자주 할 필요는 없지만 가끔씩은 침낭을 빨아줘야 오염물질이 제거되고 복원력이 좋아진다”고 조언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