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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달달한 언어로 말을 걸다

입력 | 2013-03-22 03:00:00

유머 넘치는 단편 26편 묶어 소설집 ‘달에게…’ 출간
“이제 무거운 얘기서 벗어나 독자 함빡 웃게 만들고 싶다”




각박한 세상. 신경숙은 어디서 삶의 웃음을 발견할까. “어떤 한 순간, 한 사람에게서 인간을 재발견할 때예요. ‘그래서 인간이야’란 신뢰가 들 때, ‘나도 인간이어서 좋다’란 생각이 들 때 저는 빙그레 웃어요.” 문학동네 제공

‘엄마를 부탁해’로 한국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첨병이 된 소설가 신경숙 씨(50). 그에게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 독자나 지인들로부터 가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다. “소설 잘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얘기는 쓸 생각이 없으세요?”

작가에게 유머가 없다니. 처음엔 뜬금없는 얘기라고도 넘겼지만 같은 질문이 반복되다 보니 신경이 쓰인다고 한다. “유머라든지 그런 거에는 제가 좀 모자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하지만 그것(유머)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약간 서운한 점도 있습니다.”

작가의 하소연은 이랬다. 이를테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2010년)에서 실종사, 의문사를 비롯해 죽음의 고리들이 반복되고 연계돼 있지만, 굉장히 노력해서 잠깐이라도 얼굴을 펼 수 있는 이야기들을 중간 중간 열심히 넣었다. 하지만 작품 전체를 누르는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그런 ‘숨은 유머’를 짚어 주고 얘기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소설집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문학동네·사진)를 펴냈다. 21일 서울 동교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그는 “함빡 웃게 만드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밝게 웃었다.

책은 확실히 웃긴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스님에게 전도하려고 애쓰는 젊은 목사 얘기, 스님이 집 앞에서 공양을 강요하며 ‘안∼주면 가나봐라∼’라고 염불을 외자 집에 있는 아낙네가 ‘그∼칸다고 주나봐라∼’고 응수했다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읽으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포근한 얘기들도 있다. 작가가 2008년 1월부터 2년여 동안 월간 ‘북새통’에 연재한 ‘짧은 소설’ 26편을 모았다.

“매달 원고를 넘기면서 글을 쓰는 시간 자체가 즐겁고 좋았어요. 글로 쓰지 않으면 그냥 지나갈 것 같은 순간순간의 소중한 느낌을 글에 담았죠. 항상 긴장되고 늘 무엇을 관찰하는 게 제 삶인데, 그런 쪼여 있는 시간들을 풀어주는 의미의 글들이죠. 독자에게도 삶의 긴장된, 확 내팽개쳐 버리고 싶은 순간들을 다른 순간으로 전환시키고 싶을 때 읽는 책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1985년 스물두 살의 나이에 등단해 20여 권의 소설책을 펴낸 신경숙은 “저도 쉰 살이 됐다”며 웃었다. 그동안 문학이 워낙 무겁게 다가왔다는 그의 고백. 인간의 힘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비의(悲意)를 담는 게 문학이라고 생각해 왔단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는 비의뿐만 아니라 ‘명랑성’도 다루고 싶다고 했다. “후기 작품에서는 두 가지가 배척하지 않고 거울처럼 서로를 빛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 보였다.

간담회를 마치고 신경숙과 한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었다. 내년 4월 ‘어디선가…’의 영문판이 미국에서 출간된다. 새 장편은 4개의 삶이 교차되는 옴니버스 소설과 앞을 못 보는 사람 얘기를 두고 저울질하고 있다고 했다. 330mL짜리 ‘호가든’ 맥주 두 병을 달게 비운 작가는 매일 아침 할머니들과 함께하는 요가 수업 얘기, 최근 다녀온 중국 출장에서 체했다는 얘기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그러던 중 그가 내뱉은 말. “나 되게 유머 있는데, 잘 몰랐죠?”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