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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아리랑 원형 네 구절 東亞 에서 찾았다

입력 | 2013-03-22 03:00:00

안태현 박사, 1925년 3월 16일자 지면서 확인




아리랑의 원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문경새재아리랑에 대한 기록이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 새로 찾은 문경새재아리랑은 이전의 어느 기록보다 자세해 아리랑 연구를 위한 획기적인 사료로 평가된다.

경북 문경시에 있는 옛길박물관의 학예연구사인 안태현 박사는 21일 “학술 문헌조사 과정에서 동아일보 1925년 3월 16일자 기사에 문경새재아리랑 네 구절이 있는 것을 찾았다”고 밝혔다. 안 박사는 안도현 시인의 친동생이다.

동아일보에 실린 아리랑은 “聞慶(문경)새재 덕무푸레 말채쇠채로 다 나간다/聞慶새재 박달나무(檀木) 북바듸집으로 다 나간다/黃柏(황백)나무 북바듸집은 큰아기 손목이 다 녹아난다/할미성(姑母城·고모성) 꼭대기 진을 치고 倭兵丁(왜병정) 오기만 기다린다”의 네 구절. 동아일보는 ‘동아일보 기자 지방순례’라는 연재기사에서 문경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며 문경새재아리랑을 함께 실었다. 기사에는 “檀木(박달나무)도 亦是(역시) 만은(많은) ㅱ닭에 特(특)히 此(차·이)에 대한 民謠(민요)ㅱ지 잇다”고 전했다.

이번에 발견된 아리랑 네 구절은 그간 문경새재아리랑을 전한 어느 기록보다도 분량이 많다. 미국 선교사이자 역사학자로 항일운동에도 기여했던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가 1896년 영문 잡지 ‘코리안 리포지터리(The Korean Repository)’에 아리랑을 처음으로 소개한 기록에는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방망이로 다 나간다”는 한 구절만 실려 있다. 1910년대 ‘조선속곡집’ ‘고금잡가’나 이후 1929년 ‘조선속곡집’에도 “문경새재 박달남근 다듬이방망이로 다 나간다”라는 1행밖에 남아있지 않다.

안 박사는 “아리랑은 구전으로 전해진 민요라 기록으로 남아 있는 자료 자체가 희귀하다”며 “동아일보 자료는 양도 풍부하고 당시 문경새재아리랑의 원형을 파악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특이한 것은 1925년 동아일보 기사에는 이 아리랑을 ‘박달나무 민요’라고 소개한 점이다. 당시는 아리랑에 대한 명확한 개념도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 문경에 박달나무가 많다보니 자연스레 민초들이 그렇게 불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안 박사의 설명이다. 그러나 1985년 고 송영철 선생으로부터 채록한 문경새재아리랑을 보면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홍두깨방망이로 다 나가네/홍두깨방망이는 팔자가 좋아 큰애기 손질로 놀아나네/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요 아리아리랑 고개로 날 반겨주소”라는 대목이 있어 그 원형임을 확인할 수 있다.

옛길박물관은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 특별공동기획전 ‘길 위의 노래 고개의 소리, 아리랑’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독일 훔볼트대가 소장한 ‘김그레고리의 아리랑’ 유성기 음반도 국내에 처음으로 전시된다. 김그레고리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군에 징용됐다가 독일에 포로로 잡혀서 아리랑을 녹음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전시는 4월 4일부터 5월 31일까지. 800∼1000원. 054-550-8365∼8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