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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꺼! 반칙운전]하루 9번 왕복 17시간 운전… “시간 대려면 과속 안할수없어”

입력 | 2013-03-22 03:00:00

난폭운전 부추기는 버스기사 근로실태




19일 오전 11시 50분경 경기 화성시 수원대와 서울 동작구 사당역을 잇는 광역버스 7790번 운전사 A 씨는 두 번째 운행을 마쳤다. 세 번째 운행을 시작하기까지 남은 25분은 A 씨에게 주어진 점심시간이었다. 허겁지겁 우거짓국으로 배를 채웠다. 식당에는 친분 있는 광역버스 7800번 운전사들이 있었지만 A 씨는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수원시 권선구 호매실동 능실마을 등 아파트 단지가 많은 지역을 통과하는 이 버스 운전사의 점심시간은 A 씨보다 더 짧기 때문이다.

A 씨는 하루 7번 수원대와 사당역을 왕복한다. 회당 평균 운행시간은 2시간 10분 남짓. 하루 평균 15시간가량 운전대를 잡는 강행군의 연속이다. 차가 밀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배차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종점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출발해야 했다. 그럴 때면 5시간을 내리 운전하게 된다. 화장실이라도 마음 편히 다녀오기 위해서는 가속페달을 더 세게 밟을 수밖에 없다. A 씨는 “한 번 운행을 마치고 겨우 20분 남짓 쉴 수 있다. 이것도 상습적으로 과속 신호위반 등을 했을 때 얘기”라고 했다.

사당역에서 수원역을 잇는 광역버스 7770번을 운전했던 박용상 씨(47)는 하루 9번 왕복 운행했다. 멈추지 않으려 신호를 위반하는 것은 필수였고 추월과 끼어들기는 기본이었다. 박 씨는 “휴식시간이 따로 없어 조금이라도 쉬려면 난폭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버스 운전사가 오줌통을 갖고 다닐 정도’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고 했다. 결국 박 씨는 ‘배차시간 조정’을 요구하며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경진여객 앞에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21일로 129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화장실조차 마음 편히 갈 수 없게 만드는 촉박한 배차시간이 버스 과속과 신호위반 등 반칙운전을 유발하고 있다는 게 박 씨를 비롯한 상당수 버스 운전사들의 주장이다.

경진여객 관계자는 “출근시간이나 도로 상황에 따라 배차시간을 유동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반칙운전 행태는 운전사들이 더 많이 쉬려고 하는 개인적 문제”라고 했지만 운전사들의 말은 달랐다. A 씨는 “유동적 배차시간이라고 해도 10분을 늘려주는 게 고작이다. 출퇴근 시간대는 평균 30분 더 걸린다”고 반박했다.

버스의 반칙운전은 사고로 이어진다. 버스 교통사고는 2007년 7272건에서 매년 증가해 지난해에는 8595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부상자만 1만5100명이고 216명이 도로 위에서 목숨을 잃었다.

전문가들은 ‘장시간 과로운행’이 버스의 반칙운전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교통안전공단이 지난해 한국 버스 운전사의 근로 행태를 분석한 결과 주간 평균 운행시간이 59시간으로 택시(54시간) 화물차(45시간)보다 많았다. 버스 운전사 10명 중 9.6명이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운전대를 잡았고 13시간 넘게 운전하는 사람도 전체 버스 운전사 중 18%를 차지했다.

유럽연합(EU) 일본 영국 등은 버스를 포함한 영업용 차량을 대상으로 ‘최대 연속 운전시간 제한 제도’를 둬 반칙운전을 막고 안전을 확보하고 있다. 영국은 1일 최대 운전시간을 10시간으로, EU와 일본은 9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한국은 버스 운전사의 적정 근로시간 기준이 아예 없다.

현행 자동차안전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대형버스의 최고속도 제한장치가 시속 110km로 설정된 것도 문제다. 교통안전공단 이환승 박사는 “광역·시내버스의 최고속도 제한장치를 80km로 낮추는 것이 급선무”라며 “최대 연속 운전시간 제한 제도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서울시는 2007년 이후 출고된 시내버스를 대상으로 최고속도를 80km로 낮추는 속도 제한장치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경기도 인천시 등은 아직 계획이 없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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