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강신익 지음/288쪽·1만3500원/페이퍼로드
아즈텍인들은 16세기까지도 팔딱거리는 사람들의 심장을 태양신에게 바치는 의식을 치렀다. 인간 생명의 근원이 심장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명 진화의 근원을 탐구하는 노력은 현대과학에서 유전자학으로 발전했다. 페이퍼로드 제공
많이도 우려먹는다. 벌써 몇 번째인가. 물론 시대에 따라 시각이나 전개방식이야 달라지겠지. 하지만 이 정도면 ‘구암 허준’이 아니라 ‘사골 허준’이라 불러야겠다.
예를 들어 책 제목인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도 이 같은 시각의 전환을 통해 던져보는 화두다. 유전자 입장에선 자신들이 불량인지 아닌지를 따질 가치 기준은 없다. 그저 유전자란 개체로서 살아남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인간으로선 그토록 오랫동안 진화가 이뤄졌는데 왜 아직도 우리를 괴롭히는 유전자가 존재하는지 의문스럽다. 자세한 설명은 책에서 이뤄지겠지만, 저자의 말처럼 생명이란 본질적으로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생명이다. 불량 유전자와 공존했기에 인류도 이만큼 진화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왠지 책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의 미덕은 그다지 무게를 잡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인간의 생로병사나 의학과 관련된 역사를 되짚으며 우리가 유전학이나 생물학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를 친절하게 일러준다. 문장도 딱딱하지 않고 분위기도 편안하다.
다만 눈높이를 낮춰서 그런지 얘기를 하다가 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줄기세포처럼 논쟁적인 주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밀어붙였으면 어땠을까. 사례로 든 이야기들도 다른 의학 역사책 등에서 조금씩 접했던 내용인지라 살짝 신선도가 떨어졌다. 책 끝자락에 보면 의학자이자 철학자인 앨프리드 토버의 “과학은 사실과 가치의 관계가 변화하는 양상이다”라는 명언이 나온다. 책도 그런 관계의 변화를 받아들여 업그레이드될 수 있지 않을까. 독자로서 조심스레 증보판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