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서울/최종현 김창희 지음/364쪽·2만 원/동하
18세기 중엽 그려진 ‘한양도성도’(작자 미상). 급속히 난개발된 오늘날의 서울과는 많이 다르다. 저자들은 인왕산과 경복궁 등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옛 자취로 서울의 역사와 원형을 추적했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최종현 전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와 김창희 전 동아일보 국제부장이 함께 쓴 이 책은 서촌을 중심으로 한 서울의 역사를 추적한 결과물이다. 기존의 역사서나 답사기에서 한발 나아가 특정 장소에 대한 구체적인 사료가 없는 경우엔 저자들의 연구 내공을 바탕으로 과감한 추리도 시도한다.
광해군은 점쟁이에게서 인왕산 기슭에 왕기(王氣)가 서려 있다는 얘길 듣고는 이복동생 정원군의 옛집을 빼앗아 자신의 궁궐을 지었다. 서자에 둘째 아들로 무리하게 즉위했다는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모양이다. 이것이 지금의 경희궁인데 정작 광해군은 이곳에서 단 하루도 살지 못했다. 정원군의 아들 인조가 반정으로 집권했기 때문이다.
근무지인 궁궐 가까이에 살고 싶은 관리들의 욕구가 커지면서 서촌에는 점차 왕족이 아닌 사람들도 많아졌다. 18세기에 들어서면 사대부는 물론이고 중인 지식층도 서촌에 몰려 살게 된다.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의 화가들이 서촌에 둥지를 튼 것도 그 아름다운 경치 때문이리라. 겸재는 화폭의 원경에 남산을 담은 작품 ‘삼승조망’ ‘장안연우’ ‘동대상춘’을 남겼다. 저자들은 겸재가 어느 장소에서 이 그림들을 그렸는지 구체적인 앵글을 추적한다. 명작들이 그려진 위치와 구체적 앵글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 쉽진 않았을 것이다. 저자들은 “이 언덕 저 언덕을 몇 차례씩 오르내리고, 손에 도판을 든 채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며 ‘저 앞의 건물이 없다면 이렇게 보일까?’ 일일이 맞춰보는 것은 보통의 인내심으로는 하기 힘든 일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20세기에 서촌에서 예술을 잉태한 시인 이상 윤동주 노천명, 화가 구본웅 이중섭, 친일파의 거두로 서촌에서 호의호식한 이완용 윤덕영의 흔적도 찾아간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