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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올드보이 5명의 와글와글 수다

입력 | 2013-03-23 03:00:00

“아내가 쏘아붙이면 움찔… 절로 설거지하게 돼”




11일 서울 마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50대의 ‘올드보이’ 5명이 본격적인 ‘아저씨 토크’를 하기 전에 건물 앞뜰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정재규 박태근 정광수 이경선 최학선 씨.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직장동료인 다섯 남자가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다니는 이경선 정보관리실 부장(51), 박태근 요양급여실 부장(52), 정재규 징수관리실 부장(52), 정광수 법무지원실 부장(53), 최학선 인력관리실 차장(55).

공단 회의실에 모였다. 가슴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쏟아내기 위해서다. 걱정이 앞섰다. 생김새, 성격이 제각각. 게다가 ‘아줌마 토크’도 아닌 ‘아저씨 토크’라니. ‘이야기가 이어지기나 할까?’

초반 5분. 우려가 현실이 되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워밍업이었다. 봇물 터지듯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졌다. 다섯 사람의 입은 쉴 새가 없었다. 과묵한 50대 남자 맞아? 토크는 예정된 1시간을 넘겨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유쾌하면서도 한편으론 슬픈 이야기. 우리 시대 50대 남성의 얘기를 지상 중계한다.



고개 숙인 남자?

직장은 전쟁터다. 표정은 밝지만 마음은 한없이 불안하다. 겉으론 조직의 머리인 양 으쓱대지만 속으론 꼬리로 전락할까 두렵다.

집에선? 무거운 총을 내려놓고 몸과 마음의 때를 씻어내고 싶지만 쉽지 않다. 아내 눈치 보느라, 자식 수발하느라 물에 젖은 스펀지마냥 몸이 축 처진다.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한다. 그는 믿음직한 남편, 권위 있는 가장, 능력 있는 사위여만 한다. 사실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껴안을 힘조차 부족한데….

그런데도 표정은 밝다. 사회가 그렇게 연습시킨 건지,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하다고 스스로 터득한 건지 이유는 모른다.

“혼자 있으면 외로운데 회사에 나오면 즐거워 보이려고 하죠.”(이경선)

“회사에선 연출하는 거죠. 하하.”(최학선)

이들은 공통적으로 “외롭다”고 했다. 폼 잡고 센 척도 해보지만 상처를 잘 받는다는 ‘이실직고’. 그런데 마음껏 울고 싶어도 마땅한 곳이 없단다. 아내와의 관계는 특히 어렵다.

예전엔 식사할 때 ‘폼’만 잡고 있었다는 이 부장. 요즘엔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라도 한 번 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아내 눈치를 보는 것”이란다. “예전에는 억지로 한 번씩 했는데 요즘엔 자연스럽게 설거지, 방청소를 해요. 나도 모르게 변하는 게 어색하면서도 신기해요.”

은퇴하고선 더 걱정이란다. 정재규 부장의 이야기. “얼마 전 산에 갔어요. 노부부를 보니 항상 할머니가 앞장서 있더라고요. 남자는 (은퇴하고) 일이 단절되면 아내 뒤만 따라다니게 된다는 말을 실감했죠. 여자는 부녀회와 교회 다닌다고 바쁜데 남자는 빨래 갖다 널라면 그냥 널면서 살아야 하는, 그런 미래인 거죠.”

최 차장은 이러한 모습을 생존법칙으로 설명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생존을 위해 빨래와 설거지를 하게 된다는 말. “예전엔 아내가 핀잔을 주면 즉각 반론을 제기했는데 요즘은 순간 얼음이 돼요. 요즘엔 마누라 등까지 긁어준다니까요.”

맞벌이 한다는 정광수 부장은 조금 달랐다. 부부가 똑같이 일하면 역학관계가 변하지 않는다는 설명. “나이가 들면서 아내가 굉장히 예뻐 보여요. 특히 자는 모습을 보면 천사가 따로 없어요.”

회의실이 술렁거렸다. 이 사람 뭐야, 하는 표정. 이 부장이 반박했다. “아내가 돈을 잘 버니까 예뻐 보이는 거 아닌가요?”

폭소가 터졌다. 당황한 표정의 정 부장. 서둘러 사태를 수습하려는 눈치다. “돈도 벌어다주고, 한평생 같이 살면서 고생했으니 안쓰럽고 여러 가지로 고맙지. 부모님을 모셔주니 더욱 고맙고 애잔하고.”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에게 중년남성의 성(性) 문제를 넌지시 던져봤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서로 눈치를 보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먼저 이 부장이 말했다. “친구들과 만나면 얘기한다. 넌 얼마나 (자주) 하냐고. 대부분 우정으로 산다고 얘기한다. 씁쓸하지만 현실이다. 아, 물론 우리 부부는 안 그러려고 노력해.”

부부마다 차이가 있지 않냐며 정재규 부장이 말을 이었다. “일단 나이 먹어도 노력하는 모습이 중요하다.” 서로 애교를 부리고 꼬리(?)를 치고 해야 하는데 귀찮다고 생각하는 순간 ‘섹스리스 관계’로 전락한다는 얘기.

정광수 부장은 확실히 남자 나이 50이 고비라고 했다. 50세가 되기 전엔 생각이 있으면 (부부관계를) 일단 하고 봤지만 50세 넘어가니 상대방 눈치를 본다고 했다. 상대방이 하기 싫으면 순순히 포기하게 된다. “참아도 되더라. 그런데 이게 한편으론 서글프단 말이지. 남성성이 줄어든 것 같아서.”

누군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얼마 전 새벽에 아내의 요구(?)가 들어왔다. 자는 척했다. 일 때문에 진짜 피곤해서 그랬다. 그랬더니, 와, 진짜 며칠 동안 그 일이 신경 쓰이더라. 다음부턴 기회 되면 어떻게든 몸을 만들어서 의무방어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정재규 부장의 짓궂은 농담. “그럼 그 다음부터는 아내가 ‘여보’ 이러면서 손잡으면 긴장하겠네?” 또 웃음이 터졌다.

자식, 복덩이? 웬수?


대화가 자녀문제로 넘어갔다. 사뭇 진지해졌다. 박 부장이 얼마 전 아들들과 겪었던 얘기를 꺼냈다.

“둘 다 대학생이다. 삼겹살집에 갔다. 편하게 소주 한잔하고 싶었다. 애들한테 잔을 따라주려 했더니 안 먹으면 안 되냐고 묻더라. 친구들이랑은 취할 때까지 먹고 오면서 내 잔은 받지 않아 섭섭했다.”

산책로에서 일어난 일도 언급됐다. 애들과 산행을 하는데 큰아들이 “저 먼저 갈게요”란 말만 남긴 채 먼저 가버리고, 둘째 아들도 큰아들을 뒤따라 사라졌다. 아쉬움 가득 담긴 표정으로 박 부장이 말했다. “모처럼 애들 장래 얘기를 진지하게 하고 싶었는데….”

이경선 부장의 말에 씁쓸한 웃음이 터졌다. “그래도 삼겹살 같이 먹고 50m 가준 게 어디냐.”

최 차장 역시 자녀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직장 다니면서 승진 공부를 다른 직원보다 오래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4∼6학년 때 공부하느라 바빠서 집을 나와 고시원에서 생활했다. 제일 중요할 때 곁에 못 있어 아이들과 가까워질 시기를 놓쳤다.” 혼잣말 하듯 말을 이어갔다. “아들이 중고교에 진학하면서 공부를 놓아버렸어. 결국 원하는 대학에 못 들어가고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하지. 얼마 전 징병검사 통지서가 왔더라. 되돌아보니 승진을 얻은 대신 소중한 걸 잃은 것 같았어. 아이에게 미안하고, 마음 한구석이 아파.”

정재규 부장은 자녀와 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슬프단다. “평소에 교양서적이라도 읽어서 대화기술을 익혀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젊은 마음으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서 얘길 해야 하는데 자꾸 경쟁심을 길러주는 말만 하게 된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녀들에게 ‘열심히 해라’ ‘좋은 대학 가야 좋은 직장 간다’ ‘게임 그만 해라’라고만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은 인상 찌푸리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는 설명.

아이들 키우느라 은퇴 후 대비를 하지 못했다는 것도 이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고민이다.

정재규 부장은 “아이들 키우느라 은퇴 후 대비는 생각지도 못한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들딸 쌍둥이(25)가 로스쿨과 수의대를 다닌다. 1년에 학비만 3000만 원이 든다. 요즘 뉴스를 보니까 남자가 결혼할 때 전셋집을 못해오면 안 된다는데…. 여자 쪽에서 전세 하나 해줄 능력이 없으면 헤어지라고 한다더라. 수도권에서 전세를 얻어주려면 1억5000만∼2억 원은 있어야 된다. 나 자신도 노후준비가 안 됐는데 막막하다.”

아들 가진 아버지는 모두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었다. 이 부장의 한숨. “에휴. 이제부터 나도 소비를 줄여야지. 퇴직 후엔 집을 쪼개서 아이들을 줘야 할 것 같고.”

서글프지 않고 외롭지 않기, 은퇴를 앞둔 50대의 큰 숙제다.

누군가 “얼마 전 가까운 친척이 시골에 혼자 살다가 자살했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우울감이 오면 자기 의지로 헤어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시골에도 어르신을 위한 놀이문화가 개발돼야 한다. 우리 세대는 투쟁하듯이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다. 노는 방법을 모르고 혼자 지내는 방법을 모른다.”

다소 우울한 얘기를 하면서도 표정들은 여전히 밝았다. 그래서 물어봤다. 원래 그렇게 유쾌한지. 우문현답일까. “그냥 살다 보니 이렇게 됐다. 허∼” 허탈한 웃음이 뒤따랐다.

이샘물·신진우 기자 ev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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