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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핫이슈/김학의 검증 실패, 靑선 무슨 일이]“성접대 실체 있다”에 “동영상 있나” 묻기만

입력 | 2013-03-23 03:00:00


성접대 연루 의혹을 받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사퇴에 관련해 인사 검증 책임자인 곽상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가운데)의 책임론이 거세지고 있다. 사진은 10일 청와대 위민관에서 열린 국정현안과제 토론회의 곽 민정수석.

검사장급 검찰 고위간부가 법무부 차관에 임명되자마자 ‘성접대 의혹’이라는 희대의 사건이 불거졌다. 과연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 성접대 의혹

경찰이 처음 성접대 의혹과 관련한 첩보를 입수한 것은 지난해 11월 15일경이다. 이 무렵 여성사업가 K 씨가 또 다른 여성 C 씨와 함께 서울 서초경찰서에 건설업자 윤모 씨를 강간 및 공갈 혐의로 고소했다. 단순 고소 사건일 수 있었지만 이들에게서 상상하기 힘든 얘기가 터져 나왔다. 윤 씨가 자신이 소유한 강원 원주의 호화별장으로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불러 성접대를 한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당시 이 여성들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유사한 첩보를 동시다발적으로 입수했다고 한다. 이 여성들이 변호사들을 만나 성접대 의혹을 전했고, 변호사 사회에서 이런 소문이 급속도로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또 대부업자 P 씨도 이런 얘기를 곳곳에 알린 것으로 전해진다. P 씨는 윤 씨를 고소한 K 씨의 부탁을 받고 K 씨가 윤 씨에게 빼앗긴 벤츠S500L을 원주 별장에서 찾아준 인물이다.

경찰이 첩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이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다. 여러 여성들은 김 전 차관이 윤 씨의 별장을 들락거렸다고 했다. 이 중 자신이 직접 김 전 차관에게 성접대를 했다고 증언하는 여성도 있었다. 법조인이 아니라면 김 전 차관의 얼굴을 쉽게 알 수 없지만 윤 씨가 곳곳에 김 전 차관의 이름을 팔고 다닌 것이 화근이었다. 윤 씨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김 전 차관이 최근 자신의 전화도 잘 받지 않는 등 멀리하자 섭섭함을 느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경 대검찰청에도 유사한 첩보가 올라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 무렵 대검에서 경찰에 관련 첩보를 수집하고 있는지 묻기도 했다는 것이 사정당국 관계자들의 얘기다. 그만큼 지난해 말에는 웬만한 사정·정보기관에서 관련 첩보를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대검에서는 관련 내용이 너무 황당하다고 판단해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무렵 동아일보가 첩보를 입수해 확인 취재에 나서자 사정당국은 바짝 긴장하며 증언 수집을 본격화했다.

그러다 올해 1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구성됐다. 법조계와 언론의 관심이 쏠린 가운데 김 전 차관이 검찰총장 후보군에 포함됐다. 이는 김 전 차관의 성접대 의혹이 언론에까지 알려지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 결국 이 소문의 영향 등으로 김 전 차관은 탈락했다.

○ 수차례 경찰 보고 묵살한 청와대

2월 13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황교안 전 부산고검장을 법무부 장관에 내정했다. 이후 황 장관의 경기고 1년 선배인 김 전 차관의 차관 발탁설이 돌기 시작했다. 당시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김 전 차관이 내정되기 열흘 전쯤인 이달 초 대통령민정수석실에서 경찰 쪽에 확인을 요청했다. 김 전 차관의 성접대 의혹의 실체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성접대 의혹에 대한 최초의 공식적 확인인 셈이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민정수석실에 “성접대의 실체가 있다”고 보고했다. 당시 경찰은 내사에 들어간 단계는 아니었지만 여러 피해 여성의 증언을 확보한 상태였다.

그러자 민정수석실에서는 “동영상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당시에도 김 전 차관이 등장하는 성접대 동영상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은 이때까지만 해도 동영상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경찰이 동영상을 손에 넣은 것은 20일이다. 민정수석실은 경찰 보고를 바탕으로 김 전 차관에게 사실 관계를 물었고, 김 전 차관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펄쩍 뛰었다고 한다. 청와대의 여러 관계자들은 민정수석실에서 이 같은 의혹과 해명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 전 차관이 내정된 이달 13일 직전에도 경찰은 성접대 의혹에 신빙성이 있다는 점을 청와대에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차관의 인선이 발표된 뒤 이번에는 몇몇 언론에서 청와대를 상대로 취재하기 시작했다. 김 전 차관의 성접대 의혹에 대해 청와대가 얼마나 검증 작업을 거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청와대는 다시 한 번 경찰에 “동영상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경찰은 여전히 동영상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지만 관련 증언이 많다는 점을 재차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차관 내정을 전후해 경찰은 최소 3차례 민정수석실에 첩보 내용을 전했지만 인선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이미 여러 사람이 김 전 차관을 정확하게 지목하며 윤 씨의 별장을 수시로 드나들었고 성접대를 받았다고 증언하고 있었다”며 “그런데도 민정수석실에서는 계속 동영상이 있는지 여부에만 관심을 갖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특히 경찰의 보고내용에 갈수록 구체적 진술이 포함됐음에도 민정라인이 사태의 심각성을 박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다.

○ 인사 실패가 부른 새 정부 첫 대형 스캔들

경찰의 정식 수사가 시작되고 김 전 차관이 사퇴하자 대형 스캔들의 후폭풍을 우려한 각 기관들은 볼썽사나운 생존 경쟁에 들어갔다. 민정수석실은 경찰이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며 경찰 책임론을 공공연히 흘리고 있다. 유임이 예상됐던 김기용 전 경찰청장이 경질된 것도 경찰의 부실보고 때문이라는 것이다. 급기야 경찰이 검찰과의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김 전 차관이 차관으로 임명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건을 터뜨렸다는 소문까지 나왔다.

검찰과 경찰은 기싸움이 한창이다. 검찰은 20일 경찰이 확보한 동영상을 본 뒤 “등장인물이 김 전 차관이 아닌 것 같다”는 취지로 민정수석실에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경찰은 다음 날 피해 여성에게서 “성관계 당사자가 김 전 차관이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공개하며 맞불을 놨다. 인사검증의 실패가 정부기관 간 알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정당국 관계자의 말이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성접대의 사실관계를 떠나 그런 소문이 있는 인사를 왜 차관에 임명했는지 모르겠다. 만약 김 전 차관이 연루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성접대 자체는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 애초 수사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김 전 차관의 임명만 없었다면 이 사달은 나지 않았다.” 인사검증 실패라는 돌부리에 박근혜 정부가 제대로 걸려 넘어졌다는 얘기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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