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범죄소설의 거장 제임스 엘로이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소설의 내용은 영화보다 스케일이 더 크다. 영화에서는 사건이 발생해서부터 끝날 때까지가 몇 달 정도로 보이지만 소설에서는 8년이나 되며, 195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추악하고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속속들이 묘사하고 있다. 너무 끔찍해 고개를 돌리고 싶은 대목도 많다. 결말도 원작 쪽이 훨씬 더 찜찜하다. 영화는 검경(檢警)이 사건을 해결하고도 진상을 제대로 공표하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하지만, 원작소설에서는 아예 주범을 잡지 못한다. 소설은 ‘특정 인물이나 계층이 나쁜 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위부터 아래까지 총체적으로 썩었다’는 냉소적인 시각이다.
▷이 소설은 1940년대 후반∼1950년대의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 작가의 ‘L.A. 4부작’ 중 세 번째 책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속에서 경제적 풍요를 만끽했다. 이 시기를 ‘황금기’로 묘사하는 영화나 소설도 많다. 그러나 미국인의 정신은 피폐해지고 있었다. 집단적인 불안이 광기로 폭발한 매카시즘, 허무함을 반항으로 풀어내려 했으되 방향이 없었던 ‘비트 제너레이션’이 등장한 것도 이때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던 콜필드가 기성세대는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 차 있다고 믿으며 거리를 방황하는 것도 이 시기다.
장강명 산업부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