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군 흑산도 수협 위판장에서 홍어잡이 배가 막 잡은 홍어를 부리자 경매인들이 살펴보고 있다. 동아일보DB
25일 오전 7시 전남 신안군 흑산면 수협 위판장. 크레인이 홍어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배에서 끌어 올려 바닥에 부렸다. 수협 직원들은 일일이 무게를 재고 홍어의 상태를 확인했다. 우선 암치(암컷)와 수치(수컷)를 구분하고 껍질에 상처가 많은 홍어는 배가 위로 오게 뒤집어 놓았다. 등급별로 나눠 줄을 세우자 홍어의 코에 바코드가 부착됐다. 선주명과 무게, 위판날짜 등을 알 수 있는 바코드는 흑산 홍어만이 가지는 인식표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경매가 시작됐다. 이날 8kg 이상 암치 최상품이 45만 원에 낙찰됐다.
흑산 홍어가 제철을 만났다. 홍어는 6월 초부터 한 달 보름간 금어기를 제외하곤 사철 잡히지만 초겨울부터 4월 초까지 잡히는 것을 최고로 친다. 산란기를 앞두고 살이 계속 붙어 지금쯤에 가장 차진 홍어를 맛볼 수 있다. 예부터 남도에선 가을 이후의 잔치에 홍어가 빠지면 손님들은 차린 것이 별로 없다고 섭섭해했다.
○ 남도 잔칫상에 빠지지 않는 홍어
홍어는 암치와 수치의 차이가 많이 난다. 암치는 무게가 최고 15kg까지 나가는데 수치는 보통 7kg을 넘지 않는다. 암치의 육질이 훨씬 차지고 식감이 부드러워 값도 최고 17만 원 정도 비싸다. 어찌 보면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홍어는 서남해안에서도 잡히지만 유독 흑산도 홍어를 높이 쳐주는 것은 흑산도 인근 바다에 개흙이 많고 수심이 80m 정도로 깊어 맛이 좋은 산란기 홍어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국내산 홍어는 흑산도와 대청도에서 난다. 양이 많지 않아 대부분은 중국 일본 칠레에서 들어온 홍어가 시중에 유통된다. 국내산 홍어와 수입산 홍어는 어떻게 구별할까. 수협 흑산지점 판매과 김병철 씨(34)는 “수입산은 먹기 전부터 싸한 냄새가 나지만 국내산 홍어는 씹고 난 후부터 톡 쏘는 맛이 강해진다”고 말했다.
삭힌 홍어를 썰어 삶은 돼지고기, 묵은 김치와 곁들여 먹는 ‘삼합’은 막걸리와 어울리는 음식이다. 동아일보DB
홍어는 삭힌 것부터 생각하기 쉽지만 현지에선 싱싱한 회로 많이 먹는다. 반투명 선홍색의 살을 두툼하게 썰어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넣은 소금에 찍어먹는다. 결 따라 찢어지는 살의 쫄깃함과 부드럽고 아작거리는 맛이 그만이다. 싱싱한 홍어 애(간)를 참기름장에 찍어 먹으면 고소한 뒷맛이 남는다. 삭힌 홍어는 입안을 톡 쏘는 알싸한 맛이 압권. ‘참으로 이것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 버리는 맛의 혁명’(소설가 황석영 씨)이다.
갖은 양념, 야채와 함께 버무려 먹는 홍어회무침도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홍어찜은 회처럼 씹는 맛은 없지만 자극적인 맛은 훨씬 강하다. 푹 삭힌 홍어로 찜을 해놓으면 코를 자극하는 특유의 냄새로 눈물마저 찔끔 날 정도. 오래 삭힌 홍어를 사용한 찜을 먹다 보면 독한 암모니아 탓에 입천장이 벗겨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홍어탕은 내장과 홍어를 넣고 어린 보릿대나 시래기와 함께 된장을 풀어 끓인다. 알싸한 국물은 해장에 최고의 음식이다.
신안=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