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원 논설위원
오바마와 나란히 선 사람들의 면면은 다소 의외였다. 본선보다 치열했던 민주당 경선에서 사생결단의 일합을 겨뤘던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내정자였고, 부시 정부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한 공화당 사람 로버트 게이츠는 그대로 국방장관이었다. 공화당 대선후보 존 매케인의 ‘절친’이자 민주-공화 양(兩) 진영을 넘나든 해병대 4성 장군 출신 제임스 존스는 국가안보보좌관을 맡았다. 21세기판 ‘경쟁자들의 팀(team of rivals)’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50여 년 전 동향(同鄕·일리노이 주)인 에이브러햄 링컨이 보여준 통합의 리더십을 재현한 것이다.
5년 전 가장 주목받았던 인물은 단연 클린턴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속출하는 ‘인사 참사’를 보면서 당시 기록을 찬찬히 훑어보니 ‘왜 다시 게이츠인가’를 역설한 오바마의 변(辯)이 더 확 다가온다.
이보다 명쾌한 연임 사유가 있을까. 이 자리에 서기까지 두 사람은 10여 차례 직간접적으로 만나 의견조율을 거쳤다. 게이츠는 4년 임기를 고집할 뜻은 없지만 ‘두 개의 전쟁’을 마무리 짓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고 오바마는 수용했다. 게이츠는 2년 6개월 동안 국방장관직을 더 수행했다.
‘김관진 카드’가 박 대통령이 고수했던 ‘원안’은 아니었다지만 국방부 창설 이래 첫 유임 장관이 나온 것은 의미가 있다. 미국도 다른 정당의 대통령 아래서 13명의 장관이 직을 유지한 선례(先例)가 있지만 국방부 장관은 게이츠가 처음이다. 비리 의혹에 익사한 김병관 후보자를 접고 김관진 유임으로 간 결정은 의외였고, 빠르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시간을 지체하기에는 국가와 국민의 안위가 위급한 상황”이라 했고 김 장관은 “준엄한 국가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도리”라고 화답했으니 여기까지는 아름답다.
김 장관이 다시 지휘봉을 잡은 국방부의 행로(行路)는 어떻게 될까. 박 대통령은 “국민들이 걱정하지 않고 불안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파악해서 안보 면에서나 국민안전 면에서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을 뿐이다. 새 정부에서 김 장관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과 짊어져야 할 의무가 어디까지인지도 아직은 불분명하다.
이명박 정부의 전 외교안보 핵심당국자는 “김관진을 장관에 발탁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각군 참모총장이 작전지휘권을 갖는 상부지휘구조개편을 포함한 국방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샀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휘구조개편은 싸워서 이기는 군대를 만들고 1907년 대한제국의 군대해산 이후 100년 이상 빼앗겼던 군권(軍權)을 온전히 회복하기 위한 필수적 조치라던 ‘김관진팀’의 사자후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