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균 이화여대 약대 석좌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당시로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개념이었던 이 업적은 훗날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세로토닌에 작용하는 항우울제를 개발하는 데에 초석이 되었다. 세로토닌은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처방되는 항우울제이다.
우울증의 역사는 히포크라테스가 멜랑콜리아(melancholia)의 개념을 이야기했던 시절로, 혹은 더 이전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치료 방법으로서의 항우울제 역사는 20세기 중반 이후에야 겨우 시작됐다. 즉 인류가 우울증을 겪어온 역사에 비하면 항우울제 개발 역사는 실로 매우 짧다고 하겠다.
본격적인 항우울제 개발의 시작은 매우 우연히 일어났다. 1950년대 초 새로운 결핵치료제를 시험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결핵환자들의 표정이 밝아지고 활력을 회복했던 것. 이를 기반으로 개발됐다.
앞서 말한 것처럼 1980년대 후반 세로토닌에 작용하는 항우울제가 우울증 치료에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 항우울제의 사용은 그야말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2008년 미국 통계에 따르면 항우울제는 모든 약물 중에서 세 번째로 많이 처방되고 있다. 미국인 10명 중 한 명이 현재 복용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의사와 환자가 우울 증상의 호전 정도와 이전에 소개되었던 약물들보다 훨씬 적은 부작용으로 만족하고 있다. 심지어 몇몇 항우울제의 브랜드는 우리 모두에게 매우 친숙하기까지 하다.
서구에서는 항우울제 처방이 최근 10여 년간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증가하는 현상을 두고 여러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부 학자들은 “항우울제가 우울증 치료제가 아닌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약물로 포장되어 소개되고 있다. 무분별한 복용이 우려스럽다”는 비판까지 하고 있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항우울제를 마치 행복감을 주는 명약인 것처럼 포장시킨다는 지적인 것이다.
물론 ‘우울증’이라고 할 때 떠올려지는 여러 부정적인 이미지는 오랜 기간 생성되어 온 것이라 쉽게 떨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게다가 초기에 썼던 우울증 치료제에 대해 ‘의존성이 강해진다더라’ ‘몸에 위험할 수 있다더라’는 식의 이야기를 듣고, 환자들은 더욱 복용을 꺼린다.
진료실에서 내가 만난 환자들은 우울증 약을 먹는 걸 지나치게 두려워했다. 약물에 대한 의존성, 큰 부작용, 효과 부족 등을 걱정하며 얽매여 있는 느낌이다. 실제로 2009년 한국인 6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정신장애를 앓는 환자 중에 치료를 받는 비율은 6%에 지나지 않았다. 약을 먹어야 하는 사람이 약을 꺼리는 것이다.
필자도 환자들에게 “약물에 대한 불합리한 공포를 버릴 필요가 있다”고 자주 설득한다. 반신반의하던 환자들은 어렵게 약 먹는 걸 시작한다. 그러다가 혹시 소화 불량이나 졸음 등의 부작용을 경험하게 되면 “내 이럴 줄 알았다”면서 곧 약을 끊어 버린다. 옛날과 다르게 부작용을 경험하거나 효과가 미진한 경우 2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약물이 있는데도 말이다.
가족의 반응도 한몫한다. “약에 의존해서야 되겠느냐. 스스로 의지로 버텨 내라”면서 한마디씩 거든다. 의사들은 이런 상황에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중증 우울증의 경우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자살 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살까지는 아니더라도, 직업적인 능력을 잘 발휘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이런 경우 또다시 환자를 더 우울하게 만든다.
항우울제는 나약함의 상징도 아니고, 의사의 처방에 따라 복용할 때는 의존성이 생기는 약물도 아니다. 감기에 걸리면 감기약을 먹듯이, 항우울제는 우울증에 걸렸을 때 먹는 치료제일 뿐이다.
류인균 이화여대 약대 석좌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