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메오 카스텔루치 실험극 ‘신의 아들을 바라보는 얼굴의 컨셉에 대하여’ ★★★★☆
이탈리아 출신 실험극의 거장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신의 아들을 바라보는 얼굴의 컨셉에 대하여’에서 치매에 걸린 무력한 존재였던 노인이 수류탄 세례를 받은 예수의 초상너머로 사라지는 장면. 관객의 총체적 감각에 충격을 가하기로 유명한 카스텔루치는 가장 비천한 존재(똥)에서 가장 숭고한 존재(예수)의 의미를 되묻는 이 작품에서 시각과 청각뿐 아니라 후각적 충격까지 연출해냈다. 클라우스 레페부르 제공
제7회 페스티벌 봄 개막작으로 초청된 이 작품은 예수의 대형 초상화가 관객을 마주보는 가운데 펼쳐진다.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 화가 안토넬로 다메시나의 초상화다. 그 시선 아래 새하얀 색 가구로 꾸며진 세트가 좌우로 길게 펼쳐져 있다. 왼쪽은 거실, 가운데는 식탁, 오른쪽은 침실이다.
공연의 절반 이상은 치매 걸린 아버지가 기저귀를 찬 채 계속해서 똥을 지리는 것을 정장 차림의 아들이 치우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그린다. 거실에서 시작된 극사실주의적 묘사는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점점 상징적 묘사로 바뀐다. 아들의 정성스러운 뒤치다꺼리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기저귀에 반복해 지리는 똥(실제로는 물감)은 불쾌한 냄새마저 동반하다가 침실에서는 플라스틱에 든 갈색 액체로 바뀐다.
다음 순간 초상화가 투사된 영사막 뒤에서 드릴 소리가 들리고 불꽃이 튀더니 초상화가 사라지고 ‘You are my shepherd(당신은 나의 목자입니다)’라는 영어 문장이 나타난다. 잠시 뒤에는 그 부정어인 ‘not’이 희미하게 점멸한다.
지난해 이 작품이 가톨릭권 국가에서 신성모독 논쟁을 낳았던 이유도 살짝 수긍됐다. 만일 초상화의 주인공이 예수가 아니라 무함마드(마호메트)였다면 어떤 결과를 낳았을지 상상해보라.
하지만 이 작품은 기독교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그 심오한 가르침을 극단적이고 역설적 형태로 드러냈다고 봐야 한다. 공연 속 아버지가 겪는 치욕은 신의 아들이었던 예수가 인간의 모습으로 겪어야 했던 수난(passion)을 일상에 투영한 것이다. 또 아버지의 무력한 배설은 스스로 신성(神性)을 포기했던 예수의 케노시스(kenosis·‘비움’을 뜻하는 헬라어)의 형상화이기도 하다.
만물을 이성의 눈으로만 보는 현대인에게 수난과 비움을 실천한 예수가 공연 속 아버지처럼 무력한 형상으로 나타났을 때 과연 ‘당신은 나의 목자’라고 똑같은 믿음을 선포할 수 있을까. 예수의 열두 제자처럼 가장 순수한 믿음을 간직한 어린이들조차 전지전능함을 포기한 신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지 않을까.
똥(비천)과 신성(숭고)을 병치시킨 이 작품의 탁월함은 이처럼 예술과 종교를 분리하려 한 현대적 우상을 폭발시키고 그 일치를 추구하려 한 데 있다. 카스텔루치는 무대 위에서 드라마가 아니라 필설(筆舌)로 형용할 수 없는 신적인 계시의 현현을 뜻하는 에피퍼니(epiphany)의 순간을 창조하려 한다. 이 작품이 만일 신성모독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한다면 바로 이 지점, ‘신의 영역을 넘본 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