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아빠들은 “가족인 나만 놔두고 애완견까지 데리고 해외로 떠났다”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차라리 개 팔자가 낫다는 것이다. 인류가 개를 길들인 지 1만4000년이 지났지만 요즘처럼 개의 위상이 높았던 때는 없었다. 개는 애완동물의 최대 라이벌인 고양이보다 인내심과 충성심이 뛰어나다. 전북 임실군에 전해오는 오수의 개, ‘하치 이야기’라는 영화로 제작된 일본의 충견, 폭격에 사망한 주인을 기다리다 죽은 이탈리아의 개 ‘피도’ 이야기처럼 개와 주인의 애틋한 일화는 세계 어디에나 있다. 개는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오며 자유를 내주고 먹이와 안식처를 얻었다.
▷인간은 형질과 생김새를 선택해 개의 품종을 개량했다. 사냥, 가축몰이, 집을 지키는 용도로 개를 길렀던 고대에는 다리가 길고 몸집이 큰 개가 대세였다. 기원전 3400년경 이집트 유적에 등장하는 개도 하운드 계열의 대형견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군용견으로 키웠고, 동아시아에서는 식용으로 쓰기도 했다. 농가월령가에는 며느리가 친정에 갈 때 개를 삶아가는 풍습이 나온다. 작고 앙증맞은 애완견은 15세기 유럽 귀족들이 신분 과시용으로 기르기 시작했다. 싸움 기질을 배가시킨 투견(鬪犬)의 원조는 로마시대 맹수와의 경기에 등장하던 대형견 마스티프이다. 도사견, 핏불테리어 등도 싸움을 위해 개량한 품종이다. 국내에서는 1960년대 일본에서 도사견이 전해진 뒤 1990년대까지 전국 단위 투견대회가 성행했다. 2007년 동물보호법이 개정되면서 도박 목적의 투견은 금지됐다.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