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링컨’에서 공화당 소속의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은 노예제 폐지를 위해 헌법 13조 수정안을 통과시키려고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한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이현우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
최근 개봉한 영화 ‘링컨’에는 공화당 소속 링컨 대통령이 의회에서 노예제 폐지를 위한 헌법수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하고 회유하는 과정이 나온다. 이를 보면 당시 민주당 의원들이 흑인뿐 아니라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흑인이나 여성에게 투표권을 준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일로 여겼다. 사실 공화당에서도 흑인들을 예속된 상태에서 해방시키자는 것이었지, 정치적 평등까지 이루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대공황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바꾸는 기점이 되었다.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정치력이 필요했는데 민주당 소속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제시한 뉴딜 정책이 빈곤층의 지지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주로 빈곤층에 속한 흑인들이 루스벨트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확대하긴 했지만 1932년 선거에서 흑인 투표자의 지지율은 23%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흑인들은 경제적 혜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링컨의 업적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와 같이 흑인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절대적 지지를 보이게 된 계기는 1960년대 민권운동이다. 소수자인 흑인들의 평등과 인권보장 요구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시민불복종운동으로 분출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요구를 법적으로 제도화한 것이 1964년 시민권리법이다. 이 법은 그동안 존재했던 흑인의 투표등록 장애와 학교, 직장, 공공장소에서의 인종분리 조치 등 인종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한 것이다. 민주당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주도했고 후임인 린든 존슨 대통령 때 만들어졌다.
민권운동이 일어나기 전 1960년 선거에서 흑인 투표자들의 60%만이 승자인 케네디 후보를 지지했다. 이후 소수자 인권 보호에 앞섰다는 평판을 얻은 민주당은 1968년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흑인 투표자 88%의 지지를 얻었다.
민주당은 두 번의 정치 변화의 계기에서 시대적 상황을 제대로 읽어냈다. 사실 흑인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절대적이진 않다. 현재 미국의 유권자 중 흑인 비율은 13% 정도이고 그들의 낮은 투표율을 고려한다면 예전에는 지금보다 정치적 영향력이 훨씬 작았다. 그럼에도 흑인들의 지지를 크게 이끌어 낼 때마다 민주당이 승리했다는 사실은 흑인 유권자들 덕분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당이 시대정신에 부응하는 정책을 제시하는가가 중요함을 알려준다.
이현우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