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고 인간적인 것 그려… 외전은 일종의 팬서비스”
서울대 기계설계학과 석사 출신의 작가 이우혁이 펴낸 ‘퇴마록’은 20년 동안 1000만 부가량 팔렸다. 하지만 그는 “주위에서 나를 행운아라고 하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글 안 쓰고 사업을 했다면 더 성공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2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천재 과 아니냐”며 아이큐(IQ)를 묻자 그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천재들의 모임이라는) 멘사 테스트는 거의 다 푼다”며 웃었다.
소설도 그랬다. 희곡 몇 편을 쓴 적이 있었지만 소설 창작을 배운 적은 없다. 서울대 기계설계학과 석사 출신인 그는 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스물여덟에 쓴 첫 번째 소설 ‘퇴마록’을 1993년 7월 PC통신 하이텔 게시판에 올렸다. 이 글들은 예상 밖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이듬해 책으로 나왔고 국내편 세계편 혼세편 말세편으로 나뉘어 2001년 총 19권으로 완간됐다. 그의 나이 고작 서른여섯이었다. 인세만 따져도 100억 원에 이른다.
총 판매량 1000만 부에 이르는 ‘퇴마록’이 세상에 나온 지 올해 20년을 맞았다. 이우혁은 이를 기념해 이달 말 ‘퇴마록 외전-그들이 살아가는 법’(엘릭시스·사진)을 펴낸다. 12년 만에 재개되는 퇴마록 발간 소식에 팬들은 들썩이고 있다. 작가는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총 3부작으로 퇴마록을 영화화한다는 소식을 공개한 것.
1000만 작가의 집필실은 책장 하나와 책상 2개, 2인용 소파가 가구의 전부였다. 고시생 방처럼 협소했다.
“외전 구상을 한 지는 오래됐어요. 본편에선 인물들의 목숨 건 싸움을 그리는데 소소하고 인간적인 것들도 쓰고 싶었죠. 하지만 당시 출판사(들녘)에서 ‘본편 내기도 급한데 왜 그런 걸 쓰느냐’고 해 결국 접었죠. 외전을 쓰며 초창기 순박했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좋았어요.”
‘퇴마록’은 1998년에도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배우 안성기 신현준 추상미가 출연한 작품이다. 당시 서울 관객 40만 명을 넘기며 선방했지만 이우혁의 기대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영화가 잘 나왔으면 책은 2000만 부를 넘겼을 겁니다. 영화에 실망한 사람들은 제 소설을 찾아보려 하지 않아요. 요새는 소설보다 영화를 먼저 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전작의 실패를 덮을 수 있는 새 영화를 만들고 싶은 거죠.”
시나리오는 직접 쓰고 있다. 20여 년 전 작품이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등장하는 ‘현대화’ 과정을 거치고 있고, 현재 제작사 몇 곳과 영화화를 타진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이우혁은 곧 신간 집필에 나선다. “종교, 신화, 인문학, 역사학, 생물학, 지질학을 아우르는 ‘40만 년의 우주사’로서 성경 정도의 규모가 될 것”이라고 했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그의 신작 설명을 듣다 보니 좁은 그의 원룸이 무한히 확장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