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주시 또 ‘통학車 참변’… 사고 막을 대책은 없나
창원 사고 직후인 지난달 27일 동아일보 취재팀은 서울 시내 통학차량 53대를 추적했다. 인솔교사는 동승하는지, 운전사가 아이들을 안전하게 안내해 주는지 일일이 기록했다. 당시 35대(66%)가 아무런 안전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제는 달라졌을까. 취재팀은 26일 서울 시내 학원가를 찾아 통학차량 10대를 추적했다.
강남구 대치동 A영어학원 앞. 25인승 통학차량에선 초등생 10여 명이 한꺼번에 내렸다. 아이들은 인솔교사나 운전사의 도움 없이 혼자서 50∼60cm 높이의 차량 뒷문 발판에서 뛰어내렸다. 우모 군(12)은 “운전사 아저씨가 직접 내려서 안내를 해 준 적은 한 번도 없다”며 “늘 운전석에 앉아 곁눈질로 쳐다보고 출발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4시간 동안 대치동, 양천구 목동 등 학원가에서 어린이집과 학원 통학차량 10대를 따라다니며 인솔교사 동승 및 승하차 안내 여부 등을 점검한 결과 10대 중 6대가 아무런 안전조치를 하지 않았다. 7대는 인솔교사가 없었다. 지난달보다 나아진 게 하나도 없었다.
지난달 창원 사고 직후 국회 경찰 등 관련 기관은 앞다퉈 대책을 쏟아냈다. 경찰청은 통학차량 운전사가 안전수칙을 지키는지 집중 단속에 나서겠다고 발표했고, 국회에서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안전규정을 어기면 교육시설의 인가 및 등록을 취소하고, 위반 시 처벌을 강화한다는 강력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법안은 국회 상임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무성했던 대책은 ‘또 한 번의 참사’를 막는 데 무력했다. 26일 청주 사고 소식이 전해지자 관련 기관들은 책임을 미루기에 바빴다.
경찰청 관계자는 “작년보다는 단속이 많이 늘어났다”며 “모든 통학차량을 다 따라다니며 일일이 감시할 순 없다”며 “전적으로 한 기관의 책임이라고 볼 수 없고 교육청이나 보건복지부에서도 점검하고 관리를 해야 한다”고 은근히 단속 책임을 미뤘다.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관계자는 “영세 어린이집이 많아 정규직 운전사를 고용해 차량을 운행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주머니 사정을 탓했다.
사고 소식을 접한 어머니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자꾸 생기느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녹색어머니회 김영례 회장은 “우리나라는 총체적인 안전불감증이다”라며 “이번에도 가해 운전자는 구속도 안 되고 처벌도 안 받을 것 아니냐”며 분개했다. 초등생 자녀를 둔 오현경 씨(서울녹색어머니회 부회장)는 “어떡해… 어떡해… 죽은 아이 불쌍해서…”라며 울먹였다. 오 씨는 “통학차량 앞뒤에 카메라를 의무적으로 장착하게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날 오후 청주 사고 현장을 찾은 김 양의 큰아버지(47)는 “운전사나 교사 누구든 조금만 신경 썼어도 일어나지 않을 일인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외동딸을 잃은 김 양의 어머니(39)는 충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붕대로 머리를 동여맨 채, 누워 있는 딸의 시신을 안고 3시간 넘게 놓아주지 않았다. 김 양의 아버지(41)는 “늦게 결혼해 2년 만에 얻은 귀한 딸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가족은 장례식 없이 27일 화장한 뒤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한 김 양을 하늘나라로 보내주기로 했다.
본보 취재팀은 이미 2월 창원 사고 직후 정부에 대책을 제안했다. △어린이 인명사고 낸 학원 인허가 취소 △어린이 승하차 시 인솔자 안 내리면 형사처벌 △통학차량 교통법규 위반 시 과태료 100만 원 이상 부과 △어린이에게 의무적으로 교통안전교육 실시 등이었다. 정부는 지금까지 이 중 단 하나도 시행하지 않고 있다.
이은택·조건희·최지연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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