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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가 조언하는 ‘성접대 의혹 수사 방향’

입력 | 2013-03-27 03:00:00

동영상은 검은 커넥션의 일부…윤씨 둘러싼 특혜의혹 밝혀야




건설업자가 고위층에 성접대를 한 의혹을 두고 진행 중인 경찰 수사가 단순한 ‘섹스 스캔들’을 들춰내는 수준에서 끝나느냐, 아니면 정관계 인사들과 민간업자 간의 부적절한 거래를 밝혀 내는 부정부패 사건 수사로 발전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지금 세간의 관심은 성접대 동영상 속 등장인물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맞는지, 아니라면 또 다른 정관계 인사인지 등 오로지 동영상에만 쏠리고 있다. 하지만 동영상은 건설업자 윤모 씨(52)와 고위 인사들의 검은 커넥션을 밝히는 데 필요한 증거 중 하나에 불과하며, 앞으로 경찰 수사는 정관계 고위 인사들이 윤 씨에게 제공한 것으로 의심되는 각종 특혜의 실체를 밝히는 데 모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번 수사의 궁극적 목표는 성접대를 받은 인사들이 그 대가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건설업자 윤 씨의 불법 행위를 도와 준 혐의를 밝히는 것이다.

26일 경찰청 관계자는 전날 “동영상 속 남성이 김 전 차관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에 대해 “설사 국과수가 해당 남성이 김 전 차관이 유력하다는 결론을 냈더라도 수사 상황에 별다른 차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문제의 동영상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독수)에 의해 발견된 증거(독과)는 수사나 재판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상 ‘독수독과(毒樹毒果·fruit of poisonous tree)’ 원칙에 따라 증거 능력을 갖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이 동영상은 찍힌 사람들의 동의 없이 몰래 촬영(도촬)됐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의심되는 성관계가 찍힌 동영상이라면 그 안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촬영에 동의한 것일 수 있겠느냐는 것. 이 동영상을 찍은 것으로 알려진 건설업자 윤 씨 주변에서도 문제의 동영상이 ‘협박용’으로 쓰였다는 주장까지 제기된 바 있다.

문제의 동영상은 경찰 수사 이후 계속될 검찰 수사나 기소 이후 법원의 재판에서 증거 능력을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 검찰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새 검찰총장 취임 뒤에는 불미스러운 논란이 계속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영상 이외의 증거가 풍부하게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위 법관 출신의 중견 변호사는 “경찰이 동영상이 아예 없다고 생각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폭넓은 조사를 통해 증거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독수독과론은 권위주의 시대에 고문이나 도청, 민간인 사찰 등 불법적인 수사에 대한 반성에 따라 확립된 법 원칙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수사기관의 불법적인 증거 수집을 제한한다는 취지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대법원이 노회찬 전 의원의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이 원칙이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노 전 의원은 2005년 삼성과 검찰의 유착 의혹을 폭로하며 이른바 ‘떡값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했지만 형사처벌을 받은 쪽은 노 전 의원이다.

경찰은 동영상이 아닌 다른 물적 증거를 찾아야 성접대의 실체를 밝힐 수 있다고 보고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으나, 수사지휘권을 가진 검찰, 그리고 경찰 수뇌부에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청와대 등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경찰의 수사 의지를 뒷받침해 줄지는 미지수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이 정치적으로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건을 맡아 국민적 심판대에 올라 있다”며 “주요 연루자들이 혐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확실한 물증을 찾아내겠다는 게 일선 수사팀의 확고한 의지지만 상층부에선 다른 기류가 엿보일 때가 있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전지성·신광영 기자 vers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