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성 (1961∼)
언제부턴가 내 눈에 매가 들어와 있다 그것은 내 눈동자 속에서 사납게 이글거린다 하는 수 없이 난 매의 눈으로 세상을 쏘아본다 그러니 다들 내 눈을 피한다 그럴수록 내 눈은 세상 구석구석을 매섭게 찌른다 차갑고 날카로운 매의 눈, 난 그런 눈 따위 바란 적 없다 눈곱만큼도 누구에게 해 끼치고 싶지 않았다 매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들어왔다 누군가는 그 사나운 매를 꺼내 어서 날려 보내라고 내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걸 꺼내 날려 보낼 수 있었다면 매가 눈으로 들어오도록 그냥 내버려 두었겠는가 매는 무엇 때문에 내게 들어왔는가 난 언제까지 매의 눈으로 세상을 떠돌아야 하는가 매의 눈으로 세상을 지켜보는 건 참으로 지난한 일이다 언젠가 매는 허공으로 고요히 물러나겠지 난 그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눈은 마음의 창, 마음을 알려면 눈빛을 보라고 했다. 원래 화자는 따뜻하고 순하고 부드러운 눈빛의 사람이었을 테다. 그런데 이제 ‘다들 내 눈을 피한단다’. ‘언제부턴가!’ 마음이 사나워져 눈이 사나워졌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다. 서서히, 조금씩 달라져 심지어는 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뒤에도 그걸 깨닫지 못한다. 그 변모가 원하던 바라면 누가 뭐라 해도 신경 쓸 거 없을 테지만, 화자는 ‘난 그런 눈 따위 바란 적 없다’고 한다. 사납게 이글거리는, 쏘아보는, 찌르는, ‘차갑고 날카로운 매의 눈’ 따위.
바른 길을 걸으며 다른 사람들 사정도 헤아려 주며 열심히 살았는데 너무 오랜 시간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수가 있다. 그러면 세상이 악의와 적의에 찬 듯 느껴지고 마음에 분노와 원망이 쌓이게 된다. 그 반면 게으르거나 바르지 못하거나 남에게 베푼 적 없이 산 사람은 인생이 잘 풀리지 않아도 화가 나지 않는다. 섭섭할 것도 억울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아, 어떻게 살아야 할까…니체의 잠언이 떠오른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