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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의 ‘직필직론’]‘양승태 개혁’을 위해 건배

입력 | 2013-03-28 03:00:00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법정에서 카메라가 허용됐다.

21일 대법원은 사상 최초로 재판과정을 텔레비전이 생중계토록 했다. 가히 혁명이라 할 만하다. 폐쇄적 권위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져 온 한국의 사법부, 그중에서도 대법원이 가장 먼저 자신의 속살을 온 천하에 내 보였으니 말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존중하기 위해 최고 법원이 솔선수범한 의미는 크다. “설마 텔레비전으로 국민들이 지켜보는데 막말을 하거나 졸지는 않겠지….” 그동안 판사들의 오만방자함에 실망하고 분노해 온 국민들은 조금은 안도하면서 한줄기 희망을 가질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법정에 카메라를 허용하는 것을 ‘햇볕이 들게 한다’고 표현한다. 법정이 얼마나 권위주의의 장막이 드리워진 불투명한 곳이면 그렇게 말하겠는가. 법정에 햇볕을 들게 하는 일은 참으로 멀고도 험한 길이다. 세계에서 가장 폭 넓게 법정 촬영과 방송을 허용하는 미국도 70여 년 동안 숱한 논의와 연구 및 실험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대법원을 비롯한 연방법원 판사들이 완강하게 법정 촬영과 방송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법정에 카메라가 들어오는 것을 보는 날은 그것이 나의 시체를 넘어가는 날이 될 것이다.”

데이비드 수터 미국 연방대법관은 1995년 자신의 목숨을 걸 정도로 극렬하게 연방대법원의 언론 공개를 반대했다.

소냐 소토메이어 대법관은 2009년 인사청문회에서 “법정 카메라 실험 참여를 권유받았을 때 흔쾌히 참여했다”며 허용을 찬성했다. 하지만 올 1월에는 “(텔레비전 중계를 보더라도) 미국 사람 대부분이 연방대법원의 변론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국민들의 무지함을 핑계 대며 태도를 바꿨다. 바깥에선 법정 카메라의 당위성을 설파하던 이들도 연방대법관이 되기만 하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81년 형사재판에 대한 텔레비전 방송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피고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많은 주에서 텔레비전 재판을 지지하는 암묵적 메시지로 간주됐다. 그러면서 연방대법원은 정작 자신을 드러내라는 의회나 언론의 요구를 공식적으로 검토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법정 카메라를 반대하는 가장 중요한 명분은 원․피고는 물론이고 증인과 배심원들이 카메라의 존재감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 증인도, 배심원도 없이 재판하는 연방대법원은 전혀 흔들림 없이 카메라를 거부하고 있다. 오직 대법관들 의견과 변론의 녹음만 공개할 뿐이다.

 이런 미국 연방대법원과 비교하면 한국 대법원의 결단은 놀라움 그 자체이다. 대법관 누구도 “죽음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식의 노골적 반대를 하지 않는 일치된 생중계 허용도 그렇지만 결정의 신속함이 더 놀랍다. 동시에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빠른 결정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었는가? 그리고 왜 대법원이 먼저 카메라를 허용했는가?

양승태 대법원장은 2012년 1월 “국민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재판의 전 과정에 텔레비전 중계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겨우 1년여 만에 생중계 허용이 이뤄졌다. 그전에는 거의 논의와 연구를 하지 않았던 한국의 법원이 지난 1년 동안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에 이르렀는지 알 수는 없다.

영국은 1925년부터 법정에서 촬영을 금지했다. 그러나 변호사총회는 1년여의 연구와 조사 끝에 1988년 형사재판법을 고치기 위한 실험 연구를 제안했다. 텔레비전 카메라를 법정에서 배제하는 어떤 합법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마침내 2004년 대법원은 부작용을 살피기 위한 실험 재판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20여 년 동안의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 대법원은 2009년 재판 공개를 시작했으며, 정부는 2011년 하급법원에 대한 카메라 촬영 금지를 해제했다.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 한국 대법원은 전광석화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할 만하다.

마땅히 해야 할 조치라면 그것이 빨리 이뤄졌다고 나무랄 일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찬성하는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 지도자의 고독한 결단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 개혁이다. 양 대법원장이 과감하고 신속하게 밀어붙이지 않았으면 쉽게 이뤄지지 않았을 개혁이 법정의 카메라 허용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사법부가 사회 어느 곳보다 변화에 더 둔감한 조직이라고 평가받고 있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광범위한 여론 수렴과 연구, 실험 등이 없는 조치가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릴지는 두고 봐야 한다. 50개 주 모두가 전면 또는 일부 법원에 대해 카메라 진입을 허용하고 있음에도 연방법원들은 여전히 거부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법관들의 의식과 문화를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이 미국처럼 1심 법원에서부터 카메라 허용이 이뤄지지 않은 것도 한국 특유의 법관 의식이나 문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대법원이 앞장서면 1심 법원이 뒤따를 가능성도 있다. 미국과는 달리 영국과 캐나다 모두 대법원이 카메라 반입을 맨 먼저 허용해 법정 개혁의 선구자가 되었다. 하지만 대법원의 카메라 촬영 허용으로 공정한 재판을 위한 장치가 충분해졌다고 보지 않는다. 법정 촬영 및 방송 허용의 본질은 1심 재판이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으로 원고와 피고, 증인 등이 변호사, 검사와 함께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것을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허용의 본래 목적이다. 그래야 판사들이 국민들에 대해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하며, 재판의 공정성이 높아진다. 한마디로 “부패한 검사, 지나치게 판사에게 밀착된 변호사 또는 졸거나 막말하는 판사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1심 재판의 텔레비전 공개부터 추진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영국도 대법원의 공개보다 1심 법원의 공개에 훨씬 더 비중을 둔다. 86년 만의 금지 해제는 겨우 판사의 발언에만 한정되었으나 엘리자베스 여왕이 연두 연설에서 해제 조치를 언급한 것도 그 때문이다.

‘양승태 개혁’의 길은 멀고 험난하다. 다른 나라처럼 하루빨리 1심 법원 등에까지 허용 조치를 확대해야 한다. 법정에서 기자들의 개인 컴퓨터 사용은 말할 것도 없고 소셜미디어도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동료 대법관들이 동참했듯이 한국의 법조계 전체가 그의 개혁을 성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가 가는 길이 외로운 길이 아니길 빈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