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화 강동소아정신과의원 원장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과연 친족 성폭력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밝혀지지 않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최근 친딸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사건들이 잇따라 드러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에 대해 애써 눈감아 왔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2011년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가해자 중 70% 정도가 ‘평소에 알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가족과 친척이 아동을 성폭행한 경우도 19.3%에 달했다. 가정 내 성폭력은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례가 대다수인 범죄다. 따라서 최근 밝혀지고 있는 친족 성폭력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성적 학대를 당한 피해자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어린 시절에 겪은 성적 학대는 남은 인생도 철저히 파괴한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항상 자신을 바라보는 남들의 시선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을 겪게 된다.
남성혐오증으로 남자친구를 사귀거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기 어렵다. 무력감에 빠져 있다가 쉽게 분노를 드러내는 성격으로 변하기도 한다. 특히 친족 성폭력의 피해자는 평생을 자책감과 죄책감, 수치심을 안고 고통 속에 살아간다.
“나는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항상 나를 너무 많이 만졌다. 그때 나는 직감적으로 아버지의 사랑스러운 포옹이 아닌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영화 ‘테스’로 유명한 영화배우 나스타샤 킨스키는 올해 초 독일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당한 성적 학대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이복언니인 폴라도 5세 때부터 19세 때까지 14년간 아버지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성인이 되어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고 자신의 성폭행 경험을 털어 놓는 것은 치유의 시작이다. 두 자매도 죽은 아버지에게 범죄의 책임을 묻는 것으로 스스로 치유의 첫발을 내디뎠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성충동 약물치료(일명 화학적 거세)를 모든 연령의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로 확대 적용하는 등 성범죄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처벌 강화만으론 부족하다. 부모들은 아동 성범죄 예방을 위해 자녀들에게 자신의 몸은 소중하며 몸에 손을 대려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히 거절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평소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도 성적인 장난을 하려 할 때 단호하게 “싫어요”라고 말하게 가르쳐야 한다.
아이가 불안, 공포증상을 보이거나 악몽과 야뇨증에 시달리는지, 혹시 자위행동을 하지는 않는지 잘 살펴야 한다. 부적절한 성적 행동을 하거나 장난감으로 성행위를 흉내 내는 놀이를 하는 것은 성폭력이 의심되는 징후다. 만약 아동 성폭력이 의심되면 원스톱 서비스나 성폭력 상담소를 통해 상담과 치료가 이루어져야 한다. 가해자가 가족이라 해도 반드시 신고할 수 있도록 주위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초등학교뿐 아니라 유치원과 유아원 아동 및 부모를 위한 성폭력예방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도 시급한 일이다. 전문가들이 체계적으로 아이의 치료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김영화 강동소아정신과의원 원장
▲ 동영상 = 의붓아버지와 오빠의 성폭행 (채널A 싸인 4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