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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방형남]북한의 사진조작

입력 | 2013-03-29 03:00:00


북한은 지난해 3월 총사령관 김정은이 지도하는 대규모 육해공 합동타격 훈련을 TV로 방영했다. 전투기 방사포 탱크 등 각종 무기를 동원해 서해의 외딴섬으로 추정되는 목표물에 엄청난 화력을 쏟아 부었다. 미사일로 항공기를 파괴하는 장면도 나왔다. 19분짜리 영상물에 담긴 북한 군사력은 누구나 겁을 먹을 정도로 대단해 보인다. 김정은은 주변을 둘러싼 장군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만족한 듯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한이 이렇게 엄청난 무력을 한꺼번에 동원할 능력이 있는 걸까. 국방부에 사실 여부를 문의했더니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북한이 자료 화면을 짜깁기해 실제 이상으로 군사력을 부풀렸다는 것이다. 북한은 2011년 11월에는 하지도 않은 방사포 발사를 끼워 넣은 훈련 실황을 방영했다.

▷최근 북한의 동해 상륙훈련 사진 조작도 비슷한 맥락이다. 북한은 붙여넣기 수법으로 훈련에 참가한 공기부양정의 수를 늘렸다. 군사력을 부풀려 독재정권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수법이다. 북한은 최고지도자가 들어간 ‘1호 사진’까지 조작하고 있다. ‘1호 사진’ 장난은 김정일이 2008년 뇌중풍으로 쓰러진 이후 빈번해졌다. 김정일이 건강하다고 속이기 위해 한 장의 사진으로 여러 군부대 시찰 장면을 만들어 배포했다. 김정은 사진에도 손을 댔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해 8월 김정은 사진을 전송하며 손에 쥔 담배를 지웠으나 연기를 남기는 바람에 조작 사실이 들통 났다.

▷독재자 히틀러와 무솔리니도 사진 조작을 통치 수단으로 활용했지만 앵벌이를 위해 자연 재해까지 과장하는 북한에 비하면 아마추어 수준이다. 북한은 2011년 7월 많은 비가 오자 흙탕물에 뒤덮인 대동강 주변 도로 사진을 조작해 AP통신에 제공했다. 의혹이 제기되자 AP통신은 하루 만에 “해당 사진은 디지털 기술로 변형됐다”며 전 세계 고객사에 ‘사진 삭제’를 요청했다. 이번 상륙훈련 사진 조작은 미국 시사월간 ‘디 애틀랜틱’이 처음 의혹을 제기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사진 조작으로 세계를 속이려던 북한에 돌아가는 건 신뢰 추락이라는 부메랑이다.

▷지난주 대한언론인회가 주최한 정전 협정 60주년 세미나에서 원로 언론인들은 우리 언론의 신중하지 못한 북한 관련 보도에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TV가 북한이 발표하는 김정은의 행보를 거르지 않고 과도하게 전해 국민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는 불만이 컸다. 사진과 영상 조작에서 드러난 대로 북한 집권 세력은 기회만 생기면 거짓말을 하는 집단이다. 원로 언론인들은 북한 뉴스를 다루는 후배 기자들에게 선전 선동에 속지 말 것과 과장된 협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필요 이상으로 불안을 증폭하는 일이 없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