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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진녕]정치풍토 바꾸든지 대연정하든지

입력 | 2013-03-30 03:00:00


이진녕 논설위원

퀴즈 하나. 전 세계 사람들을 학교 운동장에 학생들을 집합시키듯 한곳에 모으려면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할까. 지인이 이 퀴즈를 냈을 때 나는 중국 러시아 미국 캐나다 같은 대국(大國)을 떠올렸다. 그러나 한국도 다 필요 없다. 충청북도면 충분하다. 세계 인구가 70억 명이니 한 명당 1m²의 면적을 차지한다고 가정하면 70억 m²가 필요하다. 충청북도의 면적이 약 74억3000만 m²이니 70억 명을 다 세우고도 남는다. 어떤 문제의 답 중에는 우리의 지식과 논리, 상상력을 뛰어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우리는 신선함을 느낀다.

미국과 우린 정치풍토 달라

퀴즈 둘. 삼각형 내각(內角)의 합은 몇 도인가. 누구나 180도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답이 맞으려면 한 가지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삼각형의 밑면이 완전 평면인 경우다. 밑면이 오목하면 180도에 모자라고, 볼록하면 180도가 넘는다. 따라서 아무 전제 없이 180도라고 말하는 게 어떤 그룹에는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정답이라고 확신하는 것도 때론 부정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본론에서 좀 엉뚱한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많은 사람이 영화 ‘링컨’을 거론하며 링컨 대통령이 보여준 설득과 포용의 리더십을 극찬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야당 의원들과 만나고 식사하며 ‘꼬시는’ 소통의 리더십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박근혜 대통령더러 좀 배우라는 얘기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링컨과 오바마 못지않게 자신의 소신을 바꾼 야당 의원들도 훌륭한 소통의 달인들이다. 양쪽이 모두 고집불통인 상황에서는 설득도, 소통도 사전 속의 단어일 뿐이다.

미국의 정당은 우리 같은 중앙통제 시스템이 아니다. 중앙당이 아예 없고, 의원들의 의사를 구속하는 당론이라는 것도 없다. 의원들의 개별 의사를 존중한다. 대통령이 야당 의원을 몰래 또는 공개적으로 만나고, 설득이 가능한 것도 그래서다. 때론 여당 의원들도 설득해야 한다. 만약 우리나라 야당 의원이 대통령과 개별적으로 만난다면 내용과 상관없이 비난받기 십상이다. 설득이라도 당한다면 사쿠라(야바위꾼)로 찍힐 것이다. 야당 대표나 지도부조차 대통령을 잘 만나지 않으려는 것도 그래서다. 우리의 정치 풍토에서 미국식의 소통 리더십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새 국회법은 거의 모든 민주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과반 다수결이라는 가장 단순한 원칙을 무력화시켰다. 다수당이라도 전체 의석의 5분의 3(180석)이 안 되면 아무 힘을 쓸 수가 없다. 180석이 넘으면 법안의 일방 처리가 가능할까. 그땐 소수당이 몸을 던지는 결사 저지로 18대 국회 때와 같은 난장판 국회로 되돌아갈 게 뻔하다. 여당과 정부, 청와대가 아무리 일사불란한 대오를 갖춰도 야당을 끌어들이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이래저래 우리 국회는 여야가 타협하지 않는 한 제대로 굴러가기 어렵다. 소수당이 국회 운영의 마스터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정부조직 개편안을 둘러싼 52일간의 줄다리기는 맛보기에 불과하다.

소통-협력-통합 이대론 불가능

우리 사회는 지역 계층 세대 이념으로 갈려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국민대통합을 말한다. 대통령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48%의 국민을 포용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하지만 어떻게. 이명박 정부 때 사회통합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사회는 통합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국민통합을 국정의 최우선에 두고,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설치하고, 야당 인사를 포함시킨 국가지도자연석회의를 만들고, 대통령 직속으로 기회균형위원회를 운영하고, 탕평 인사(人事)를 한다면 국민대통합을 이룰 수 있을까. 개헌을 하면 그것이 가능할까. 솔직히 국민대통합은 꿈같은 얘기다.

퀴즈 셋. 그렇다면 대통령과 야당이 원활하게 소통하고, 여야 협력으로 국회가 잘 굴러가고, 국민통합에 다가갈 수 있게 하는 현실적인 방안은 뭘까.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