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원<전북대 진정한 대학생활 원한다면>원대한<원광대학교 한번 해보자>설레군<설계하는 내일의 군산대>… 新구호 아래 지방대생들 뭉쳤다
진대원을 만든 한성국 씨. 전주=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지난해 3월 한성국(전북대 농업경제학과 4학년)이라는 이름의 전북대 대학생이 ‘진대원’이라는 행사를 열었다. ‘진정한 대학생활을 원한다면’이라는 뜻의 이 행사는 지방대생들이 스스로 조직한 일종의 ‘대학생 대외활동 박람회’였다.
전북대생 2명, 다른 대학 학생 3명으로 구성된 연사들이 공모전 요령, 창업 경험담 등을 말하고, 각종 봉사활동이나 해외연수 경험이 있는 ‘멘토 대학생’ 20여 명이 팀을 이뤄 참가 학생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했다.
진대원, 원대한, 전대일을 아시나요
“처음에 부대찌개 집에서 친구에게 아이디어를 설명하며 ‘같이 하자’고 말을 꺼냈죠. 그 친구는 ‘세상 물정 모르는 애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하네’ 하고 여겼었대요.”
한 씨는 “지방대생들이 너무 자격지심에 위축돼 있어서 대외활동도 처음부터 포기하는 게 안타까웠다”라고 계기를 설명했다.
이 학생 멘토단을 구성하기 위해 안 씨와 친구들은 대기업 및 금융회사의 전북지역본부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거기서 홍보대사로 일하는 원광대생이 있으면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해가 가기 전에 인근 대학들에서 비슷한 조직이 만들어졌다. ‘전대일’(전주대학교 일어나자), ‘한대희’(한일장신대 진정한 대학생활을 희망한다면), ‘설레군’(설계하는 내일의 군산대)…. 이들 조직은 최근 한자리에 모여 올해 활동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 ‘지방대생 신흥 자활조직’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각종 서포터스나 홍보단이길 거부했다. 학교 재단과도, 총학생회와도 선을 그었다. 전북도 일자리종합센터 등에서 일부 예산을 지원받기도 했지만 처음 구상부터 기획, 운영까지 모두 학생들이 스스로 했다.
25일 원광대 교내 카페 ‘타임스테이션’에서는 원대한 3기 운영진이 모여 가을 행사 기획회의를 열었다. 대기업 공채가 대부분 1학기에 진행되기에 2학기에도 취업이 확정되지 않은 4학년생들은 공황 상태에 빠진다. 올해 행사는 그런 학생들을 타깃으로 정했다.
“취업률에 반영이 안 돼 학교에서는 신경 안 쓰는 부분 있잖아. 만화가, 시인, 소설가, 프리랜서 같은 거. 그런 길도 보여주자.”
3기 회장을 맡고 있는 문찬종 씨(행정학과 3학년)가 제안하자 전수영 씨(복지보건학부 4학년·여)가 “웹툰 작가를 강사로 불러오자”고 받았다.
같은 날 전북대 학술문화관 103호에서는 진대원 주최로 ‘결혼에 관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강연회가 열렸다. ‘젊을 때 취업뿐 아니라 결혼 문제도 고민해야 하지 않나’라는 취지로 결혼정보업체 대표를 초청했다.
원대한이 ‘취업 서포터스’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동안 진대원은 스스로를 ‘기획 동아리’로 규정했다. 꼭 취업과 관련이 없더라도 ‘진정한 대학생활’의 기회를 줄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는 거다. 최근에는 개강을 즈음해 학생들이 버리는 전공서적을 모아 폐지업체에 주고 재생용지 노트를 받아오는 이벤트를 벌였다.
이들의 모임에서는 종교단체와 흡사한 열기마저 느껴졌다. 진대원 운영진인 황기연 씨(농업경제학과 2학년)는 “아버지는 ‘쓸데없는 일 하지 말고 도서관에서 공무원시험 공부를 하라’고 하지만 난 진대원을 통해 대학생활을 발견했다”며 “행사 때마다 사진을 찍어 부모님께 보낸다”고 말했다. 원대한 운영진인 이지현 씨(수학정보통계학부 4학년·여)는 “첫 행사는 기획은 좋았지만 운영이 산만했다”며 “내가 힘을 보태면 바꿀 수 있을 것 같아 지원했다”고 말했다.
25일 전북대에서 열린 ‘결혼에 관한 오해와 진실’ 강연회. 앞줄에 보이는 이들이 진대원 현 운영진.
진대원과 원대한의 멤버는 각각 20여 명이다. ‘나대는 애들’이라는 냉소적인 시선도 없지 않지만, 이들이 벌이는 이벤트가 학교 주최 행사보다 오히려 호응이 좋다. 철저히 학생 눈높이에서 기획되기 때문이다.
‘왜 이런 활동을 하는가, 혼자 취업을 준비하는 게 더 낫지 않나’에 대한 학생들의 답은 거의 겹쳤다. 지방대생 콤플렉스를 떨칠 수 있게 해줘서, 기업에서 후원하는 대학생 단체와 달리 스스로 뭔가를 기획할 수 있기 때문에…. 길용재 씨(원광대 경영학부 4학년)는 “다른 원광대생을 위해서 일해보고 싶었다”고, 김동민 씨(전북대 경제학과 3학년)는 “우리끼리 끈끈하게 뭉쳐야 살아남지 않을까”라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차라리 재수를 해서 ‘인 서울’ 대학에 가는 게 보다 현실적인 답안 아닐까? 한성국 씨의 답은 이랬다. “공부는 못하겠더라. 수능 다시 보는 건 자신이 없었다.” ‘입시 공부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대답은 당당하고 떳떳했다. 한편 요즘 대학 학생회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인지, ‘원래 이런 활동은 총학생회가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거의 마지막까지 풀리지 않은 의문은 ‘왜 이런 움직임이 전북 지역에서 시작됐을까’라는 것이었다. 학생들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전북은 큰 기업이 없어서 대외활동 기회가 적고, 그만큼 대학생들이 절박했던 것 아닐까”라는 의견을 냈다. 전북도가 500만 원 안팎의 행사비를 지원한 게 큰 도움이 됐다는 답도 나왔다. 공태영 씨(전북대 경영학과 4학년)는 “계속 생각을 해봤는데 처음에 한성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 말에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익산·전주=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