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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김유영]대기업 반수생

입력 | 2013-04-01 03:00:00


김유영 경제부 기자

올 초 대기업에 입사한 김모 씨(28)는 ‘취업 반수(半修)생’이었다. 대학 신입생이 합격한 대학이 마음에 안 들어 학교에 다니며 재수하듯 작은 회사에 다니며 대기업 입사를 준비했다.

해외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2011년 작은 무역회사에 들어갔다. 월급은 대기업보다 적었지만 신입이라도 다양한 업무를 맡아 배우는 것도 많았다.

하지만 머지않아 후회가 찾아왔다. 소개팅에 나가 회사명을 밝히면 대부분 “네?”라는 물음과 마뜩잖은 표정이 돌아왔다. 연봉을 얘기할 때는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결국 입사 3개월 만에 ‘대기업 고시’ 준비에 나섰다. 퇴근 후 회식 권유를 뿌리치고 독서실로 향했다. 마침내 대기업 신입공채에 붙은 김 씨는 “하는 업무는 별게 없지만 주변 시선은 달라졌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처럼 결혼 적령기의 젊은이들에게 중소기업은 어떻게든 벗어나야 할 직장으로 치부된다. 일각에서는 젊은이들의 ‘도전의식 부족’을 탓하지만 젊은이들만 탓하긴 어려운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중소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비슷한 일자리를 맴돌 가능성이 크지만 대기업에 입사하면 평생 쌓을 커리어가 달라진다. 저마다 다른 꿈과 재능을 지닌 젊은이들이 취업 문턱에서 대기업 입사라는 ‘균일화된 꿈’을 꾸는 건 어찌 보면 합리적인 선택이다.

중소기업 직원에 대한 처우가 유난히 낮은 영향이 크다. 한국의 대기업 임금 대비 중소기업 임금은 64%.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20개국 중 꼴찌다. 반면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등 중소기업 강국의 이 비율은 90% 이상으로 중소기업 임금이 대기업과 엇비슷했다.

‘일자리 미스매치(불일치)’의 비극은 그래서 생겨난다. 대기업 일자리는 한정됐는데 여러 명이 달려드니 취업은 점점 어려워진다. 서울의 한 중위권 대학이 삼성전자 합격자 명단을 자랑스레 플래카드로 내거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인재를 못 구해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다.

해결책은 중소기업 육성에 있다. 대기업에 한정된 좋은 일자리를 중소기업에 확산시키기 위해 ‘관(官)’이 ‘치(治)’ 해야 한다. ‘될성부른’ 중소기업은 더 클 수 있게 자금이든 기술이든 지원해야 한다.

정부 자금으로 연명하는 중소기업은 과감한 업종 전환 등 리스트럭처링(구조개혁)으로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중소기업이 일한 만큼 과실을 거둘 수 있는 ‘공정한 토양’도 가꿔야 한다. 청년 취업 문제는 산업·금융·경제를 아우르는 종합대책으로 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지 않으면 김 씨와 같은 ‘대기업 반수생’은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다.

김유영 경제부 기자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