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희생 헛되지 않게… 112 개선 두 눈 부릅뜨겠습니다
신광영 사회부 기자
1년 전인 지난해 4월 1일은 일요일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10시 반경 당신은 휴대전화 조립공장에서 야근을 하고 집에 가던 길이었죠. 일을 하며 짬짬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스물여덟의 꿈 많은 딸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월급을 절약해 부모 생활비를 대던 당신은 그날 밤도 택시 대신 버스로 퇴근하다 변을 당했습니다.
문을 뜯고 들어온 오원춘과 마주해야 했던 그 공포의 시간 동안 경찰은 엉뚱한 곳을 헤맸습니다. ‘나 여기에 있다’고 당신이 필사적으로 알리려 했던 단서들을 경찰은 묻지 않았고, 듣고도 흘려버렸습니다. 13시간이 지나 당신을 발견하고서도 경찰은 “어쩔 수 없었다”며 거짓 해명을 했습니다. 당신의 마지막은 그래서 더 참담했습니다.
당신의 죽음은 공권력의 무사안일을 통렬히 일깨운 희생이었습니다. 한 경찰 고위 간부는 “오원춘 사건이 없었다면 112 개선 작업이 이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저와 동료들은 얼마 전 ‘경찰, 수원 20대 여성 피살사건 축소 은폐’ 보도로 한국기자상을 받았습니다. 당신과 유족의 처절한 불행이 저희에겐 상(賞)으로 돌아온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하늘에 닿지 못할 이 편지가 당신에게 어떤 위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찰이 112를 바꿔놓겠다는 약속을 제대로 실천하는지 감시하려 합니다. 그게 당신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우리의 의무인 것 같습니다.
신광영 사회부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