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 잇단 강대강 대결 왜?
“미국 본토와 미제 침략군 기지들과 남조선의 모든 적대상물을 타격하게 된 전략로케트군부대들과 장거리포병부대들을 포함한 모든 야전포병군집단들을 1호 전투근무태세에 진입시키게 된다.”(지난달 26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성명)
“적이 도발해오면 평소 훈련한 방법대로 즉각적이고 자동적으로 도발 원점과 지원·지휘세력까지 강력히 응징해야 한다.”(같은 날 김관진 국방부 장관)
정전협정 백지화, 남북 불가침 합의 폐기, 1호 전투근무태세 진입, 전시 상황 돌입 등 북한의 대남도발 위협이 연일 높아지자 한국군도 강성 발언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남북의 군 수뇌부가 이렇게 ‘강대강(强對强)’ 일변도의 대결 양상을 보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지난달 30일자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최근 대치 국면이 과거보다 훨씬 심각해 보인다”고 우려할 정도다.
정부 관계자는 ‘강대강’ 대응 이유에 대해 “북한의 강경 도발 위협에 군이 강경하게 대응해야 북한의 오판과 국민의 동요를 막는 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비록 수사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북한이 연일 도발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군의 단호한 견해 표명은 국민의 불안감을 없앨 수 있다”며 “북한의 도발에 대한 억제력 측면에서도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군 내부에선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겪으면서 군내에 ‘북한을 응징해야 한다’는 강경한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대북 강경 기류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한 군 장성은 “북한의 도발로 전우를 잃었던 만큼 군 내부에선 북한이 도발하면 제대로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결기가 형성돼 있다”며 “말로 하는 보복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군이 대북 강경 발언을 하면 “전쟁을 부추기는 것이냐”는 비판이 적지 않았지만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안보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군의 이런 부담감도 크게 줄었다.
그러나 군의 대북 강경 발언이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강경해졌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정부는 오히려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남북대화로 이어갈 여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북한이 이 국면에서 자제하면 인도적 지원을 비롯해 남북 간 신뢰를 회복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가 북한의 개성공단 폐쇄 위협에 대해 “새로운 위협이 아니다”라며 그 의미를 축소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북한의 도발 위협은 내부불만 폭발 막으려는 것
한 당국자는 31일 “북한의 군부 강경파는 체제에 대한 북한 내부의 불만이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이 때문에 외부의 적을 만들고 전쟁이 임박한 것처럼 선전하는 심리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도발 위협이 대남, 대미 메시지의 성격도 있지만 그보다는 체제위기를 벗어나려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장기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처럼 북한의 ‘대내용 심리전’의 목표가 분명하기 때문에 이런 위협으로 내부의 동요가 해소되지 않을 경우 실제 대남 국지도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쟁 일촉즉발의 상황이라는 인식까지 몰고 가야 권력엘리트와 주민들의 결속을 도모하기 쉽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정부는 북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군부 강경파의 득세 속에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등 온건파가 힘을 못 쓰고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장성택 같은 온건파나 최룡해 같은 강경파 모두 최고의 과제는 ‘김정은 체제 유지’이다. 단지 그 방법론이 다를 뿐인데 두 진영 간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북소식통 사이에서는 북한의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장성택이 숙청됐을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손영일·윤완준 기자 scud2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