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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민동용]바버라 월터스와 정은아

입력 | 2013-04-01 03:00:00


세기적 스캔들의 주인공 모니카 르윈스키,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비틀스의 링고 스타, ‘걸프전의 영웅’인 고(故) 노먼 슈워츠코프 육군 대장, 영화배우 패트릭 스웨이지.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30대 이상의 한국인이라면 어디선가 이름은 들어봤을 명사들이다. ‘인터뷰의 여왕’ 바버라 월터스가 인터뷰한 인물들이라면 ‘아하’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좀더 정답에 가깝게 말한다면 월터스와 인터뷰를 하면서 울어버린 사람들이다.

▷월터스는 인터뷰하는 인사의 마음을 무장 해제시켜 진짜 속내를 드러내게 하는 인터뷰어로 정평이 나 있다. 1970년대 그와 인터뷰했던 한 고고학자는 “월터스는 정원에 나 있는 길로 인도하듯 안심시켜 놓고는 갑자기 풀숲에 숨어 있던 뱀처럼 질문을 퍼붓는다”고 평했다. 그의 오랜 친구이자 CBS방송의 간판 뉴스 앵커였던 댄 래더도 “겉모습은 사교계에 갓 데뷔한 상류층 여성 같지만 가슴속에는 암살자가 들어 있다”고 했다.

▷53년간 그를 당당한 현역으로 마이크를 잡게 만들었던 건 이런 집요함과 엄청난 경쟁의식이다. 2001년 9·11테러 직후 그가 몸담고 있던 ABC방송의 특집 보도는 후배 여성 앵커 다이앤 소여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발끈한 그가 방송사 직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사장에게 호통을 쳤던 일은 유명하다. 어떻게 하면 ‘살아있는 전설’의 노기를 풀 수 있을까. 고심하던 사장은 당시 뉴욕시장이던 루돌프 줄리아니 인터뷰를 그에게 맡겼다.

▷KBS가 봄 개편과 함께 건강정보 프로그램 ‘비타민’의 진행자 정은아 씨를 하차시킨다고 밝혔다. 정 씨는 이 프로그램 시작부터 지금까지 9년 9개월간 진행한, 방송계의 몇 안 되는 베테랑 여성 방송인이다. 문제는 후임 진행자 중 한 명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5촌 조카 은지원 씨를 발탁했다는 것. 보수건, 진보건 새 정부 출범 때마다 방송사가 정권 눈치를 보는 버릇이 도졌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이래서야 능력과 자질, 의지와 노력을 다 갖췄다 하더라도 월터스 같은 인물이 우리나라 방송계에서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

민동용 정치부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