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대우전자 연구소장 3인방… 세번의 매각실패 끝에 부르는 희망가
착잡하기는 김경학 세탁기연구소장(52·당시 세탁기연구팀 근무)이나 양경회 주방기기연구소장(53·당시 주방기기개발부 근무)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을 포함한 대우전자의 거의 모든 직원들은 이른바 ‘대우 사태’ 이후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 간 빅딜(대규모 사업 교환)을 막기 위해 반 년 가까이 서울 본사와 경북 구미, 광주를 오가며 시위를 벌였다.
위 소장은 “엔지니어로서의 마지막 오기였던 것 같다. 1990년대 ‘가전 명가’로 불리던 우리가 경쟁사인 삼성으로 팔려간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제 정말 끝인가’ 싶던 올해 1월, 마침내 동부그룹이 대우일렉을 인수했다. 대우일렉은 1일부로 동부대우전자가 됐다. 이제까지 묵묵히 연구소를 지켜 온 대우전자 사람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명 변경을 이틀 앞둔 지난달 29일 부평연구소를 찾아 연구소의 세 소장을 만났다.
○ 한 우물만 파는 ‘바보 특공대’
양 소장은 1984년, 위 소장과 김 소장은 각각 1987년과 1989년 대우전자에 입사해 동부대우전자가 겪은 파란만장한 드라마를 두 눈으로 지켜봤다. 가장 궁금했던 점부터 물어봤다. “왜 여태 (회사를) 안 옮기셨어요?”
김 소장은 “바보 같아서”라고 했다. 세탁기 연구팀은 1999년 140명이던 인원이 2009년 15명으로 줄었다. 구조조정에 떠밀려 나간 사례도 있지만 제 발로 걸어 나간 사람도 많다. 사실 세 사람도 그동안 경쟁사들로부터 수없이 많은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대우전자 시절 이들이 기여한 히트작도 많다. 냉기가 뒷면과 양 측면에서 나오는 ‘입체 냉장고’, 공기방울을 이용해 세척력을 높인 ‘공기방울 세탁기’, 초보 주부들을 위해 요리법을 알려주는 ‘말하는 오븐’이 이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 “헝그리 정신으로 승부하겠다”
현실은 냉혹했다. 해가 갈수록 인력은 점점 줄었고, 채권단은 투자를 늘려줄 수 없다고 했다. 연구개발(R&D) 예산은 내놓기 부끄러울 정도로 턱없이 부족했다. 그럴 때마다 이를 악물었다.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기업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했다. 한 번의 연구로 반드시 성과를 내는 ‘원샷, 원킬’을 달성하기 위해 밤샘 합숙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부러 강조하지 않아도 ‘헝그리 정신’으로 똘똘 뭉쳤다.
김 소장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시작된 직후인 2000년 초 동료 과장 20명과 함께 용인연수원에서 합숙하며 세탁기 혁신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6개월간 고생한 끝에 46단계이던 세탁기 제조공정을 26단계로 줄여 원가를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무세제 세탁기’, ‘세제 자동 투입 세탁기’가 이때 나온 제품이다.
세 사람이 이끄는 연구소는 2009년 이후 매년 꾸준히 신제품 라인업을 내놓았다. 위 소장은 김치냉장고가 내장된 대용량 3도어 냉장고 ‘클라쎄 큐브’, 김 소장은 세계 최초의 벽걸이형 드럼세탁기, 양 소장은 10분 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스스로 대기전력 ‘제로’ 상태가 되는 전자레인지를 지난해 선보였다. 세 제품 모두 화려하진 않지만 소비자 행동 패턴을 철저히 분석해 혁신을 이룬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변 사람들조차 ‘아직 대우전자가 있어?’라고 묻곤 해요. 그동안 세상에 잘 알리지 못했을 뿐 우리는 꾸준히 연구해 왔거든요. 이제 날개를 달았으니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제대로 승부해 보고 싶습니다.”(위 소장)
부평=김지현·김용석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