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호 논설위원
취임 후 경위를 알아봤다. 농협금융의 최대주주인 농협중앙회의 최원병 회장이 회추위에 전권을 넘긴 후 장기출국 해버렸고, 헤드헌트사는 50명의 후보 명단을 회추위에 올렸으며, 후보를 좁혀가는 막판에 ‘청와대의 복안은 다른 사람이다’라는 논란이 있어 확인한 결과 “그런 것 없다”는 답변이 와 회추위 뜻대로 했다는 것. 자율인사의 핵심은 전권 위임과 외풍 차단이었다.
주변에서는 ‘최원병 회장이 MB의 동지상고 후배여서 아무도 감히 간여 못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신 회장은 ‘MB 덕분’에 된 사례는 아니다. 하지만 MB 요인이 없었다면 외풍이 불 수 있었고, 그랬다면 회장이 안 됐을 수 있다. 새 정부는 이런 경우도 ‘MB 인사’라며 교체하려 들까.
공공기관장은 무늬만 공모제일 뿐 은밀히 내정해놓고 절차만 밟는 방식이어서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도 취임 전 MB의 낙하산 인사를 비판했다. 대통령직인수위는 “공공기관장 인선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겠다. 이를 위해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과 인수위의 말은 아직 유효한가.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인사를 장차관에 임명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공기업 사장이 정권과 국정철학을 공유할 일은 없다. 역량과 성과로 충분하다. 완전 민영화돼 정부가 인사에 개입할 근거가 전혀 없는 KT나 포스코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어떤 자리에 선임 절차나 임기를 정해둔 것은 ‘그것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낙하산 인사가 더 낫다’ 혹은 ‘정권교체기에는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설혹 그렇다면 절차를 무시할 게 아니라 “제도를 바꾸자”고 요구하는 게 옳다. 이번에 꼭 사람을 바꿔야겠다면 “적어도 이번만큼은 이러저러한 까닭으로 제도 개정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며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안 물러나면 먼지 털기를 시작할 듯’ 어르는 방식은 더이상 안 된다.
공영방송 사장도 마찬가지다. 민주화 이후에도 대통령이 되면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사장을 바꿨고, 공정성 시비가 반복됐다. 굴레를 끊으려면 어떤 대통령이든 한번은 손해 봐야 한다. 공정성 시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장이 나와 개혁을 추진해야 우리도 BBC, NHK 같은 방송을 갖게 된다. 그게 돈 한 푼 안 들이고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쌓는 길이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