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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염재호]사립대 이공계가 울고 있다

입력 | 2013-04-02 03:00:00


염재호 객원논설위원·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요즘 대학가는 소위 포스트BK(Brain Korea·두뇌한국)사업 준비로 여념이 없다. BK사업은 학문분야별로 우수 대학원을 선정해 7년간 석사, 박사 과정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한 이 사업은 시시비비,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우리 대학의 연구경쟁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한 게 사실이다.

BK사업은 올해부터 3단계 사업에 들어간다. 각 대학은 더 많은 사업단을 따내기 위해 필사적이다. 열흘 전의 교육부 공청회에는 2000명 가까운 교수들이 몰려들어 교육부 당국자에게 열띤 질문공세를 벌였다고 한다. 사업단에 끼지 못하면 해당 학문분야에서 최고 수준이 아니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이고 우수 대학원생 유치도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7년간 계속되는 사업이어서 한번 탈락하면 후유증이 매우 크다.

포스트BK사업을 둘러싼 사립대 이공계의 위기감은 상상 이상이다. 예산 제약으로 순수과학 분야는 3개 내외, 공학 분야는 4, 5개 내외의 사업단만 선정한다. 이런 규모면 우수 사립대 이공계 대학원들조차 명함을 못 내민다. 이공계 연구가 본격화한 지난 십여 년간 정부와 대기업의 집중 지원을 받아온 서울대, KAIST, 포스텍이 저만치 앞서가고 있기 때문이다. 출발부터 불공정한 셈이다.

이런 위기감은 작년에 출범한 기초과학연구원의 사업단 선정에서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 정부가 1년에 5000억 원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과학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투자하는 이 사업에서 사립대 이공계는 완전히 찬밥 신세였다. 매년 100억 원을 지원하는 50개 사업단에 국내 사립대 이공계 교수는 단 한 명도 선정되지 못했다. 외국 교수를 초빙해 사업단을 구성한 사립대 두 곳만이 겨우 턱걸이로 들어갔을 뿐이다.

이공계 육성은 미래의 국가발전을 좌우하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선진 외국도 이공계 대학에 대한 지원은 대부분 국가가 책임진다. 수조 원의 기금을 갖고 있는 하버드대조차 예산의 20% 정도는 연방과 주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고 한다. 이공계 기피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다양한 정책을 내놓는 것도 국가경쟁력을 올리는 데 그만큼 이공계 인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국립대는 정부가 지원하지만 사립대는 수익자부담원칙에 따라 등록금에 의존해 운영해 왔다. 그래선지 정부가 사립대 이공계를 지원하지 않는 것을 너무나 당연시해 왔다. 정부의 이공계 지원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키고 사립대 이공계의 위기를 가속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50년간 국가 발전을 이끈 다양한 인재를 배출하고 연구와 교육에도 기여해온 사립대 이공계에도 동일한 지원을 하는 게 옳다.

그런데도 현실은 정반대다. 국립대법인인 서울대와 KAIST는 정부의 이공계 연구비를 대거 수주한다. 태어날 때 ‘국립’이라는 금수저를 물고 나왔기 때문이다. 포스텍도 사실상 국가기업인 포스코의 후원으로 급성장했다. 서울대가 1년에 3600억 원, KAIST가 1800억 원의 예산을 정부로부터 받는데 우수 사립대조차 정부지원액이 1년에 100억 원도 채 안된다. 요즘처럼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는 대기업의 사립대 지원도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반값등록금 여파로 사립대의 등록금은 몇 년째 동결되거나 오히려 줄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포스트BK사업에서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는 서울대와 KAIST 같은 대학이 또다시 BK사업에 대거 선정된다면 정부 지원의 이중수혜 논란이 일 수 있다.

올해 정부 연구개발비는 17조 원에 달한다. 작년 우리나라 연구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03%로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가 됐다. 전체 연구개발비 총액도 50조 원으로 영국을 제치고 세계 6위가 되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연구를 이끌고 갈 우수 대학원생들을 지원하는 BK사업은 연간 3000억 원에도 못 미친다. 그런데도 효과는 크다. 지난 두 차례의 BK사업을 통한 우리나라 연구경쟁력 향상은 BK사업이 연구개발 투자 대비 가장 효과가 높은 사업임을 증명하고 있다. 돈은 적게 들이고 성과는 많이 이뤄냈다는 뜻이다.

따라서 포스트BK사업은 더 확대해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BK지원사업의 예산이 적어 우수 사립대 이공계 대학원이 지원을 받지 못하고, 유능한 학생들이 일찍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바람에 고도의 지식을 쌓고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일이고, 국가적으로는 큰 손실이다.

이공계는 국립이나 사립을 불문하고 우수한 교육과 연구를 하는 곳이면 정부가 동일한 지원을 해야 한다. 이공계 대학원 인재 육성에 들어가는 돈은 미래 국가경쟁력을 위해 꼭 필요한 투자이기 때문이다. 21세기 사회를 지식사회라고 하면서 지식을 창조하는 대학원에 정부의 투자가 인색한 것은 잘못이다.

염재호 객원논설위원·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jhyeom@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