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균 이화여대 약대 석좌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소방관은 화재 현장이든, 구조 현장이든, 늘 다른 사람의 고통이 있는 곳으로 출동한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인 만큼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에서 얘기하는 ‘외상’에는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일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끔찍한 일을 목격한 경우, 또는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 일어난 끔찍한 일을 알게 된 경우도 포함된다. 이러한 고통이 필요 이상으로 크게 각인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을 수 있다. 소방관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기 쉬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대다수 소방관은 이런 증상을 복합적으로 경험한다. 우리는 이런 소방관들의 헌신에 너무 익숙해져서 아예 감사하는 마음조차 갖지 않게 된 것은 아닐까. 이들이 심리적 외상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사회의 당연한 책임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뇌과학에서 주목받는 연구가 있다. 바로 리질리언스(resilience), 우리말로 풀이하면 ‘탄성력’이다. 물리학에서 탄성력이란 외부 힘으로 변형된 물체가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힘을 뜻한다. 이와 유사하게 정신건강의학에서 리질리언스란 정신적으로 심한 외상을 겪고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심리적 외상을 경험한 뒤 사람들은 각각 다른 반응을 보인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어떤 이는 극복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우울증으로 계속 고통을 받는다. 극복할 수 있는 탄성력에 차이가 있어서다.
공의 탄성력을 높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공기 저항을 줄여 주거나, 공의 탄성력 자체를 높이는 것이다. 이를 소방관에게 대입해 생각해 보면 방법은 간단하다. 탄성력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 된다.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는 “진화 작업이나 경보에 대한 반응 등을 살펴볼 때 응급 상황을 자주 접하는 소방관이 심혈관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내용의 논문도 실렸다. 우리나라는 소방관 인력 부족과 열악한 환경 때문에 완전한 3교대 근무가 어렵다고 한다. 2008년에야 2교대 근무가 아닌 3교대가 되었지만 아직도 2만여 명의 소방관이 더 있어야 완전한 3교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응급 상황 스트레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당연히 소방관들의 탄성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인간은 ‘계속 위험 상황에 놓여 있다’는 불안이 지속될 때 탄성력이 낮아진다. 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A우리(짐승을 가두어 두는 곳)에 전기쇼크를 준 경우 안전한 환경인 B라는 우리로 옮기면 쥐는 쉽게 불안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전기쇼크를 주지 않아도 다시 A우리에 넣으면 쥐는 매우 민감해진다.
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장비도 허술하고, 인력도 부족해서 동료들이 계속 다치거나 사망하는 상황에서는 사람도 계속 불안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방관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장비와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전장갑이 없어 소방관들이 일반장갑을 끼고 출동했다가 양손의 피부가 벗겨졌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답답함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비가 필요한 이유는 뇌와도 관련이 있다. 뇌의 회복하는 능력이 잘 발휘되려면 뇌가 건강한 상태여야 한다. 화재 진압 시 호흡 장비가 없어 독성물질을 흡입하면 뇌의 기능이 떨어지게 된다. 이런 상황이 장기적으로 반복되면 뇌 구조가 망가지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스트레스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려고 일과가 끝난 후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울 확률도 커진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다.
류인균 이화여대 약대 석좌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