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극 ‘Love, Love, Love’ ★★★★
기성 체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았으면서도 그 체제를 가장 맹렬히 비판한 유럽 68세대의 모순과 변질을 가족극의 형식으로 풍자한 번역극 ‘Love, Love, Love’. 산드라 역의 전혜진(왼쪽)과 케네스 역의 이선균, 두 부부 배우의 실제를 방불케 하는 능청스러운 연기에 너무 심취하다 보면 자칫 원작의 날 선 비판을 간과할 우려가 있다. 명동예술극장 제공
1967년 당시 19세의 옥스퍼드대 학생 산드라(전혜진)와 케네스(이선균)는 이렇게 외치며 비틀스의 ‘올 유 니드 이즈 러브(All You Need Is Love)’에 맞춰 춤을 춘다. 정부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명문대를 다니던 케네스는 형의 애인이던 산드라와 사랑에 빠진다. 그들 커플에게 로큰롤은 구태의연한 기성세대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표상이었고, 대마초 피우는 행위는 위선적인 기성제도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려는 몸짓이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욕망에 거침없이 솔직한 것이 미덕이요, 금기를 깨는 것이 곧 자유요, 기성에 물들지 않는 신선함은 생명이었다.
“이혼밖에 없어…. 우리가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야.”
“로지, 이건 네 인생이야. 네 인생 네가 사는 거야.”
다시 20여 년 뒤인 2011년 60대 연금생활자로 각자 황혼녘 인생을 만끽하던 산드라와 케네스는 맏딸 로지(노수산나)의 호출을 받고 오랜만에 해후한다. 아들 제이미(노기용)는 부모의 무관심으로 대인기피증 환자가 됐고 로지는 재능도 없는 헛된 꿈을 좇다가 노처녀 백수가 됐다. 로지는 자신의 인생을 부모가 망쳤다며 책임과 보상을 요구한다. “엄마 아빠가 세상을 바꿨어? 아냐. 세상을 샀어. 사유화했어. 엄마 아빠가 한 게 뭐야? 평화? 사랑? 웃겨. 그냥 자기네 원하는 대로, 자기네 맘대로 한 것뿐이야.” 하지만 돌아온 답은 더 유치하다. “엄마 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 말 안 들었어. 도대체 왜, 우리 말을 들은 거야? 반항했어야지.”
영국의 떠오르는 젊은 극작가 마이크 바틀릿의 최근작을 번역한 이 3막의 연극(이상우 번역·연출)은 한국의 386세대에 비견되는 서구 68세대의 변질과 타락을 이렇게 달콤 씁쓰레하게 풍자한다. 이선균 전혜진 부부가 능청스럽게 연기한 케네스와 산드라 부부는 1막에서 자유분방하면서도 귀여운 연인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2막에서 속물이 되어버린 맞벌이 중산층 부부로 바뀌면서 그들이 꿈꿨던 자유라는 게 결국 인생을 살면서 짊어져야 할 책임의 방기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3막에서 황폐해진 자녀들의 삶을 외면한 채 자신들의 관심사에만 몰두하는 지독한 나르시시스트로 묘사함으로써 68세대가 진짜 속물 아니냐고 고발한다.
68세대와 386세대를 단순하게 등치시킬 순 없다. 하지만 한때 자유와 평등을 목 놓아 부르던 이상주의자들이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 그들이 비판했던 기성세대보다 더 지독한 현실주의자가 되어버린 것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운 이들이 얼마나 될까. 다행히 한국의 386세대에게 3막의 시간은 아직 닥치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다른 3막을 기대해도 될까.
21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2만∼5만 원. 1644-2003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