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 ‘서편제’ ★★★★
창극 ‘서편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송화와 동호의 해후 장면에선 명창 안숙선이 송화 역으로 등장해 판소리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국립극장 제공
씨가 다른 오누이를 데리고 남도를 떠돌던 소리꾼 유봉은 오빠 동호가 떠나간 뒤 혼자 남은 누이 송화의 눈을 멀게 해 마음속 깊은 한을 심어준다. 뒤늦게 누이를 찾아 나선 동호가 20여 년 뒤 어느 쓸쓸한 주막에서 득음(得音)한 송화를 만나 눈처럼 쌓이고 술처럼 빚어진 그들 인생의 한을 한바탕 소리로 풀어낸다는 원작의 골격은 그대로다.
다만 매 장면 판소리를 하는 장면이나 주인공들 내면의 심리를 펼치는 장면에 판소리 다섯 마당 중 그에 부합하는 대목을 끌고 와 절묘하게 병치했다. 영화나 뮤지컬에선 오누이가 해후하는 장면처럼 극적인 하이라이트 부분에서만 이를 적용하던 것이 창극에선 거의 전 장면에 쓰였다.
한국의 빼어난 풍광을 절묘하게 살려낸 무대연출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에서 유봉과 오누이가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내려오는 굽이굽이 황톳길을 형상화한 세트(박동우)에 남도의 사계절 풍광을 수묵화 느낌으로 투사한 영상(정재진)이 빚어낸 그림이 아름다웠다. 화선지 느낌이 물씬한 수직 블라인드 막에 흰 포말이 이는 폭포수를 형상화한 장면과 동호가 자신이 오라비임을 감추고 송화의 소리를 청해 듣는 마지막 대목에서 흰 눈이 쏟아지는 장면도 일품이었다.
유봉과 동호의 갈등구조만 좀더 설득력 있게 보완한다면 국립창극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삼기에 손색이 없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