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주목받는 검은돈 천국 조세피난처
○ 역외 탈세 최대 21조 달러, 세계 GDP 30%
주로 조세피난처 역외 금융을 통한 탈세 규모는 8조∼21조 달러(약 8913조∼2경3340조 원)에 이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21조 달러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합계(72조4858달러)의 30%에 해당한다. 영국의 조세정의네트워크(TJN)는 139개국의 역외 금융을 분석한 결과 2010년 현재 그 규모가 21조∼32조 달러에 달하며 탈세액의 절반은 100만 명당 13명꼴인 9만1000명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조세피난처는 법인에서 발생하는 실제 소득의 전부 또는 상당 부분에 대하여 세금을 부과하지 않거나 법인의 부담세액이 당해 소득의 15% 이하인 국가 또는 지역을 말한다. 기업은 천문학적인 절세나 탈세가 가능하지만 정부는 엄청난 규모의 세수 감소가 생긴다.
○ 경쟁 조세피난처들 ‘위기는 기회다’
뉴욕타임스는 1일 “키프로스가 흔들리면서 다른 조세피난처들이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다른 조세피난처들이 러시아 부호 등의 탈세를 도와온 키프로스의 변호사들과 회계사들에게 e메일과 전화로 ‘자금 관리’ 기술을 홍보하며 키프로스에 있던 자금 유치에 나섰다고 전했다. 특히 유로존인 지중해 몰타 외에 스위스, 룩셈부르크, 케이맨 제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싱가포르 등에서 법인 이전과 새로운 자금 이동 방법 등을 알려주며 호객행위를 한다는 것.
키프로스 부유층의 자금 빼돌리기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키프로스는 구제금융 가능성이 제기된 2월부터 이미 외국인 예금의 18%가 해외로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가운데 최근 며칠 동안 20만 유로(약 2억8000만 원) 이상의 현금을 해외로 몰래 가지고 나가려다 적발된 것이 3건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가 1일 전했다. 구제금융을 받는 키프로스 은행과 라이키 은행에 거액을 예치한 러시아 등 외국 예금주들에게 몰래 돈을 빼내주겠다는 제안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미 지난해 미국의 스타벅스 구글 페이스북 등은 놀라운 탈세 수법으로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스타벅스는 1998년 영국에 진출한 이래 30억 파운드(약 5조1166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세금은 860만 파운드(약 147억 원)만 냈다. 구글은 세계에서 거둔 수익 중 98억 달러를 버뮤다로 옮겨 20억 달러를 절세했다.
이에 따라 올해 2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들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만나 “다국적 기업의 세원 잠식과 소득 이전에 대응하는 대책들을 개발하고 필요한 집단적 행동을 취하기로 했다”고 결의했다. 또 다국적 기업의 탈세 방지를 위해 7월까지 OECD 차원의 행동계획을 마련키로 했다. 영국은 2월 다국적 기업의 탈세를 전담하는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독일 프랑스 등 유로존 11개국은 내년 1월부터 자국의 금융기관은 물론이고 자국의 금융기관과 거래하는 모든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주식과 채권, 파생금융상품 거래에 금융거래세(토빈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실린 ‘핫머니 블루스(Hot Money Blues)’라는 글에서 “키프로스 사태는 자본 자유화의 종언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