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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창조의 꽃’ 꺾지나 말라

입력 | 2013-04-03 03:00:00


배인준 주필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국민행복 시대’ 깃발이 아스라하다. 새 정부 초기다운 신명이 느껴지지 않는다. ‘창조경제, 경제부흥’에 생명을 불어넣어야 할 텐데, 정부는 드라이브를 못 걸고 있다. 경제에 열기는 아닐지언정 온기라도 퍼져야 할 텐데, 착 가라앉았다.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 기업 ‘손본다’는 소리가 유령처럼 떠돌아 오히려 냉기가 감돈다.

‘창조경제’를 놓고 정부 출범 한 달도 더 되어 여당과 행정부가 뜻풀이 논란을 벌이는 모습이 한심하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 정부의 민얼굴을 보는 듯하다. 여당 의원들조차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니,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라도 나서서 딱 부러지게 정리해야 할 것 아닌가. 대통령의 강조대로라면 ‘창조경제’는 국정철학의 키워드일 텐데, 뜻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철학을 공유하나.

현 부총리는 올해 경제정책을 처음 밝힌 지난달 28일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라며 “어떤 난관에 부닥쳐도 굳은 의지로 한발 한발 나아가겠다”고 했다. 산을 만나면 길을 트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 것,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이미 첩첩산중에 내던져져 있다. 정부가 말장난이나 하고, 화살을 돌려 애먼 기업 군기나 잡겠다고 설치면 길을 트기 전에 산이 무너지고, 다리를 놓기 전에 물이 넘쳐버릴 것이다.

이미 2300년 전 맹자(孟子)는 “백성은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이 없다”고 통찰했다. 일정한 생업과 경제적 안정이 있어야 바른 마음이랄까 변치 않는 양심을 지킬 수 있다는 뜻 같다. 아침에 일어나봐야 할 일이 없고 남들은 일터로 가는데 산봉우리로 발길을 옮겨야 하는 사람, 빚의 악몽이 삶 그 자체가 되어 버린 사람에게 ‘국민행복 시대’가 무슨 의미이겠는가.

경제 앞뒤에 ‘창조’ ‘민주화’ ‘부흥’을 붙여 아무리 외쳐도 그것만으로 중산층 70%, 고용률 70%를 손에 쥘 수는 없다. 세금으로 행복을 만들어 나눠주는 것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자본주의에 모럴 해저드를 너무 물 타면 경제와 시장만 시들고 만다. 벌기 위해 뛰는 사람은 줄고 누워서 받아먹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거대한 경제병원이지 건강한 시장이 아니다.

적정한 납세는 의무이지만 너무 쥐어짜면 국외로 도망가는 돈이 급증할 것이다. 저런 나쁜 놈들이 있나 해도 소용없다. 돈은 돈의 생리에 맞게 다루는 게 옳다. 사유재산권과 경제자유를 통제했던 사회주의가 무덤을 판 것도 돈의 생리를 거슬렀기 때문이다. 국민 주머니에서 세금을 거둬 정부가 손때를 묻힌다고 시장이 커지고 소비와 일자리가 늘어나지는 않는다. 이것이 인류의 경험이고 경제의 이치이다. 요컨대 기업을 통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창조경제이건 혁신경제이건 실용경제이건 답은 하나이다.

종업원 열 명만이라도 먹여 살리는 사업자라면 애국자이다. 대통령도, 장차관도, 국회의원도, 시도지사도 기업과 기업인들을 발아래 존재로 여기고 툭툭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정치인들이 권능을 과시할 수 있는 것은 그동안 나라가 발전했기 때문이다. 피땀 흘려 기업을 일구고 일자리를 만든 기업인들의 공로가 적지 않다. 공무원들이 꾸벅 인사를 받으며 퇴직 후까지 삶의 안정을 누리는 것도 국부(國富)를 키워낸 기업인 덕이 크다. 책임 있는 정치인과 국민의 공복이라면 기업들이 국내에 더 투자하고 일자리를 하나라도 더 만들도록 제도와 정책으로 뒷받침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절박한 경제에 희망의 싹이라도 틀 것이다.

정치권력은 기업들을 길들이기 위해 국세청 검찰 등을 동원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국세청 검찰 공정거래위 금융위원회 사람들이 정권과 일부 국민의 점수를 따기 위해 ‘기업 손보기 기획’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업과 시장에 겁을 준다고 경제 숙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노무현 정부가 경제와 기업과 시장을 파괴적으로 다룬 후과(後果)를 기억해보면 알기 쉽다.

공정거래위원장은 경쟁촉진 정책에 헌신하면 된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소관 분야 산업과 교역과 시장을 ‘진흥(振興)’하는 데 매진하면 된다.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말한다고 장차관들이 너나없이 ‘기업 옥죄기’ 경쟁에나 나서면 그런 나라에 돈이 모이고, 투자가 일어나고, 일자리가 생기고, 내수가 커지겠는가. 경제민주화가 교조주의(敎條主義)로 흐르고, 정치권력과 정책권력이 시장과 기업을 자의적으로 개조하려 들면 창조경제부터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 것이다.

정치와 정부가 시장과 기업을 놓아주는 것이 또 하나의 경제민주화이다. 시장이 규제의 속박에서 최대한 벗어나 창의(創意)와 혁신(革新)과 효율(效率)을 마음껏 추구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긴요한 경제민주화이다. 창조성이 가장 큰 기업들의 발을 묶어놓고도 창조경제를 하겠다면 잠꼬대이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