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조
할리우드 영화 ‘킬러조’(지난달 7일 국내 개봉)는 최근 내가 본 영화 중 단연 가장 저질스러운 내용이라 할 만하다.
이야기는 암흑가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살해당할 위기에 처한 청년 ‘크리스’가 아버지와 새어머니와 친여동생이 사는 찌든 컨테이너 집을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청년은 아버지에게 “(친)어머니를 청부살해하자”고 제안한다. 어머니가 죽으면 여동생 ‘도티’에게 보험금이 지급된다는 것.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혹여나 도티가 이 말을 들을까 무섭다”며 머뭇거리지만, 이 말을 엿들은 10대 딸 도티는 “나는 대찬성! 엄마를 죽여요. 그 대신 내게도 한몫 떼어줘야 해요”라고 발랄하게 말한다.
이게 웬일? 어머니의 사망 보험금은 딸이 아니라 어머니의 새 남자친구 앞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던 것! 알고 보니 아들에게 “네 어머니가 죽으면 큰 보험금을 탈 수 있다”고 꼬드겼던 장본인은 어머니의 새 남자친구였다. 어머니의 남자친구는 어머니를 아들이 청부살해하도록 만듦으로써 제 앞으로 나올 막대한 보험금을 차지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장 스토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건 또 웬일? 알고 보니, 친어머니의 남자친구와 친아버지의 새 아내(즉, 청년의 계모)가 서로 불륜 관계였던 것! 둘은 당초 보험금을 타내 함께 떠나기로 계략을 꾸민 것이었다! 아, 여기서 설상가상의 진수가 나온다. 살인청부업자 킬러조는 청년의 여동생과 눈이 맞아 “결혼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집안은 난장판이 된다.
어떠신지. ‘콩가루 집안’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런 상상하기조차 힘든 이야기를 연출한 감독이 바로 심령공포영화의 고전 ‘엑소시스트’(1973년)를 만든 거장 윌리엄 프리드킨이란 점. 저질 얘기도 거장이 만들면 예술로 승화된다고 하지 않던가. 이 영화는 일부 평단으로부터 “배금주의에 찌든 인간의 비틀린 욕망을 파격적으로 그려냈다”는 (영화보다 더욱) 놀라운 평가를 받았다.
‘킬러조’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기겁할 만한 집안을 보여주는 영화가 또 있다. ‘다시, 뜨겁게 사랑하라!’(1월 국내 개봉)라는 영화가 그것. 이 영화는 아내를 잃고 평생 홀로 살아온 성공한 사업가가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풍광 좋은 이탈리아 해변마을로 갔다가 예비 며느리의 어머니(즉, 사돈)와 사랑에 빠진다는 얘기다.
여기서 긴장을 늦추지 말 것! 더욱 기겁할 일은 결혼식장에서 벌어진다. 신랑이 “이 결혼, 못 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결혼식을 위해 오랜만에 이탈리아로 돌아온 신랑은 십여 년 만에 재회한 옛 ‘불알친구’와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이다. 동성애!
자, 어떠신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하시는지. 하지만 과연 이들 영화 속 이야기가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돼먹지 못한 상상의 소산에 지나지 않을까? 친딸을 성의 노예로 삼는 인면수심 아버지, 산속 별장에 떼로 모여 집단 성관계를 가졌다고 하는 일명 ‘사회지도층’ 인사들, 자는 남편의 눈을 찔러 눈을 멀게 해 보험금을 타내려 했던 아내, 일본 욱일승천기를 배경으로 나치식 경례를 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자랑스레 사진으로 담아 인터넷에 올리는 대학생들…. 이는 모두 우리 사회에서 얼마 전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인 것이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저질이 아닐까. ‘영화보다 더욱 영화적인 것은 현실’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은 그래서 나온 것 같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