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식 (사)시대정신 상임이사
‘백년전쟁’은 다큐멘터리 형식을 띠고 있지만, 사실의 엄밀성이 중요한 다큐멘터리의 기본 요건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미 여러 번 지적돼 여기서 자세히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행적과 업적에 대한 왜곡과 날조가 가장 치명적이다.
그 목적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광복 후 대한민국의 성취에 대한 자학과 부정이라는 게 중론이다. 현대사의 압도적 두 거물을 폄훼함으로써 그들이 주도한 ‘오늘의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무너뜨리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사를 ‘친일과 반일’ ‘종속과 자주’라는 이분법으로 단순화한 것도 두 전직 대통령을 친일과 종속의 범주에 옭아 넣기 위한 정략적 틀로 여겨진다. 이 작업의 최종 목표와 배경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은데, 이인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이 문제는 국가안보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런 상황을 예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계기가 됐든 현대사가 사회적 관심사가 된 것은 바람직하다. ‘하나의 역사적 진실’을 하루빨리 찾아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는 보수와 진보, 좌와 우가 가장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지점이며,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지역과 세대 등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현대사 인식이 국민통합을 가로막고 있기도 하다. 진실을 향한 공동의 노력이 경주돼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자회견을 준비 중이라는 말도 들리지만, 이것으로는 안 된다. 각기 반박 영상물을 제작하고, 회견을 한다고 해서 현대사에 조예가 부족한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객관적 판단이 쉽지 않다. 오히려 기존 입장만 강화될 것이다. 반드시 상호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의견이 다른 두 진영이 역사적 관점과 쟁점을 놓고 한자리에서 공개토론을 벌여 이를 지켜본 국민과 언론이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사)시대정신은 지난달 28일 민족문제연구소 측에 ‘백년전쟁’을 포함한 한국 현대사를 주제로 공동 학술 심포지엄을 열자고 제안하는 서한을 보냈다. 심포지엄은 현대사뿐 아니라 편향 논란이 끊이지 않던 국사교육의 문제점도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으로 우리는 기대하고 있다. 모쪼록 민족문제연구소의 책임 있는 결정을 바란다.
물론 이것은 단기간에 성과를 거두기 힘든 지난한 작업이다. 국내 이념지형과 갈등구조에서 발화성이 큰 현대사를 주제로 합리적, 지속적 대화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대한민국 공동체의 통합과 도약을 위해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지식인 사회의 각성과 분투를 고대한다.
유성식 (사)시대정신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