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솔로브 미국 조지워싱턴대 로스쿨 교수가 2007년 펴낸 책 ‘평판(評判)의 미래’는 2005년 한국 지하철에서 벌어진 ‘개똥녀 사건’으로 시작한다. 그는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치 않은 여성의 행동은 잘못이지만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진, 이름, 학교와 가족관계까지 공개하며 비난을 퍼붓는 마녀사냥식 인터넷 여론몰이의 위험을 경고한 것이다.
▷인터넷의 ‘집단 이지메’는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와 결합하면 맹독성(猛毒性)이 된다. 과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카더라’ 통신은 트위터, 블로그,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을 통해 하루도 안 돼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누군가가 정보를 흘리면 영향력이 큰 ‘루머꾼’이 퍼뜨리고, ‘구글 세대’들이 신상 털기에 나서는 식이다. 인터넷에서는 ‘잊혀질 권리’도 없다.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기도 어렵다. 연예인이나 고위관료처럼 평판이 중요한 사람들은 극단적 선택에 내몰린다.
▷이철규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이 그제 건설업자의 전현직 고위관료 성접대 리스트를 유포한 트위터 사용자 55명을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그는 “헛소문이 돌아 자살까지 생각했다”며 “이대로 그냥 넘어가면 유언비어로 사람을 죽이는 악습이 계속된다”고 말했다. 허준영 전 경찰청장은 “성접대를 받았다면 할복자살하겠다”는 글까지 트위터에 올렸다.
▷유언비어는 사안이 중요하고 상황이 모호할수록 급속도로 퍼진다. 한미 쇠고기 협상,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때도 사건마다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악의적인 세력은 유언비어로 비이성적인 군중심리를 자극한다. 1923년 일본 간토(關東)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은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고 일본인들을 습격하고 있다”는 유언비어로 시작됐다. 사이버 유언비어는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할 수 있으나 수사가 쉽지 않다. 유신시절 악명 높던 경범죄처벌법의 유언비어 날조 유포 조항은 민주화와 함께 1988년 사라졌다. 표현의 자유는 보장해야 하지만 악의적 유언비어는 법을 바꿔서라도 없앨 때가 왔다.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