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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특급호텔 ‘36년 도어맨’ 은퇴하는 권문현 씨

입력 | 2013-04-04 03:00:00

정재계 차번호 300개 외워… 차 도착 순간 고객특성 알죠




 “제가 퇴임해도 웨스틴조선의 고품격 서비스는 계속됩니다.” 특급호텔 도어맨으로 36년간 근무하고 5월 퇴임하는 권문현 씨는 “고객들의 건강과 행복을 평생 기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특급호텔 도어맨. 호텔의 가장 낮은 직책 중 하나지만 고객의 처음과 마지막을 책임지는 자리다.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 호텔 도어맨 권문현 씨(60)는 1977년 입사 이후 현재까지 36년 반평생을 도어맨으로 살고 있다. 그가 외우는 정재계 인사들의 차 번호만 300개가 넘는다. 발레 파킹을 위해 벤틀리, 페라리, 마이바흐, 포니, 티코 등 안 몰아본 차가 없는 것은 직업으로 얻은 덤이다. 5월 퇴임을 앞둔 그가 겪은 도어맨은 무엇일까. 그는 무엇을 얻었을까.

정중함 속 맞춤형 고객 배려

도어맨의 세계는 눈이 오든 비가 오든 정중함이 생명이다. 근무 중에는 절대 큰소리를 내지도, 뛰지도 않는다. 사적인 대화도 나누지 않는다. 진한 향수는 쓰지 않는다. 가글액은 항상 휴대한다. 금연은 기본이다. 체크아웃이 많은 오전 11시경에 맞춰 점심 식사는 30분 만에 마친다. 하루 8시간 반을 꼬박 서 있기도 한다. 이따금 무시하는 태도나 반말을 접해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많게는 하루 60건의 체크인을 돕는다. 최대 200건의 고객 요청을 처리한다.

에스코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의 특성과 선호를 파악하고 이를 ‘기억’하는 일이다. 권 씨는 차 번호를 암기하기 위해 수차례 테스트를 봤다. 지금도 조간신문 2개를 챙겨 보며 신문 인사면 동정을 확인한다.

“차가 호텔로 들어오면 번호를 보고 곧바로 누가 타고 있는지를 파악합니다. 일부러 1, 2분 정도 차 문을 늦게 열어 줄 때도 있어요. ○○○ 박사님처럼 차 안에서 신발을 벗고 있다가 고쳐 신고 내리는 분도 있거든요. 아예 모른 척하는 걸 좋아하는 분들도 있어요. 이런 분들에게는 눈과 표정으로 환대를 표현합니다.”

이제는 그를 먼저 알아보는 고객들도 있다. 국회의장을 지낸 한 원로 정치인은 권 씨를 오랜만에 만나면 ‘이 친구, 어디 갔다 왔어’라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다른 도어맨의 아들 이름까지 지어줄 정도로 마음이 따뜻했던 한 유명 교수는 “혼자만 남아 쓸쓸하지 않으냐” “춥지 않으냐”며 걱정을 해준다. 한 대기업 회장은 반가워하며 “똑바로 근무해”라고 장난을 친다. 한창 현장을 뛰던 기업 인사들이 어느덧 중역을 맡아 호텔을 방문하는 모습을 목격한 것도 부지기수다.

눈비가 세차게 몰아치던 10여 년 전 어느 겨울날, 여권을 놓고 공항에 도착한 고객을 위해 직접 김포공항으로 차를 몰고 달려가 전달한 적도 있다. 이 고객과는 인생의 친구가 됐다.

“이순신 장군 옷차림으로 근무한 시절도 있었다”

특급호텔 도어맨도 사회 변화와 함께 많은 게 변했다. 군부정권 시절과 그 문화가 잔존하던 1970, 80년대에는 손님들에게 거수경례를 하기도 했다. 도어맨들이 이순신 장군을 연상케 하는 듯한 빨간색 갑옷 차림의 유니폼을 입고 근무한 적도 있었다. 전 직원이 빵모자를 쓰고 차이니스칼라 유니폼으로 근무한 적도 있었다. 엘리베이터 걸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일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허리를 45도가량 숙인 뒤 밝은 모습으로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건네는 게 기본이에요. 저는 그만둘 때까지 2 대 8 가르마를 유지할 겁니다. 고객들이 익숙하고 편안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사라진 문화인 ‘팁’에 대한 에피소드도 있다. 1970년대 후반 한국을 찾은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와 수행원들이 호텔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100달러나 200달러를 팁으로 준 일도 있었다. 당시 환율로 계산하면 두 달 치 월급을 하루에 받은 셈이었다.

36년 도어맨 인생은 그의 삶과 성격 전체를 바꿔 놓았다. 웨스틴조선에 입사하기 전 건설회사에서 일했고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으로 나갈 것을 꿈꿨을 만큼 혈기왕성했던 그다. 하지만 어느덧 온화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더 익숙해졌다. 단 한 차례도 지각한 적이 없을 정도로 성실했다는 점은 그만의 자부심이다.

“저는 고객을 돕는 제 일에 늘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오묘하게도 많은 사람을 위해 문을 열고 또 에스코트하면서 열린 것은 저의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새롭게 열릴 인생도 항상 밝은 모습으로 노력하겠습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