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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해야 청춘이다]‘세계 男心’ 정복 나선 추혜인 아트&디자인 대표

입력 | 2013-04-04 03:00:00

“위스키병 닮은 남성화장품 탐나지 않나요”




남성 화장품 브랜드 ‘스웨거’를 이끄는 추혜인 아트&디자인인터내셔널 대표(왼쪽)와 창업 때부터 그와 함께한 오혜림 실장. 이들이 디자이너의 강점을 살려 만든 스웨거의 제품 패키지는 지난해 대한민국 최고경영자(CEO) 100인이 선정하는 올해의 ‘잇 어워드’ 디자인상을 받았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새파랗게 젊은 여성이 웬 남성 화장품 사업을…. 아마 잘 안될 걸요.”

새로운 남성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나선 아트&디자인인터내셔널(ADI) 추혜인 대표(30)에 대한 화장품업계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 살이었다. 너무 무모한 도전을 하는 건 아닌지 스스로도 의구심이 생겼다.

하지만 용기를 내 2011년 9월 내놓은 화장품 브랜드 ‘스웨거(Swagger)’는 다행히 ‘뽐내며 걷다’는 영어 뜻 그대로 폼 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추 대표는 2009년 디자인 및 브랜드 컨설팅업체인 ADI를 창업했다. 미국 로드아일랜드스쿨오브디자인 산업디자인과를 거쳐 홍익대에서 디자인 경영 석사과정을 졸업한 직후였다. ADI에서 고객 기업의 제품 디자인과 브랜드 컨설팅을 맡아 하다가 스스로 화장품사업에 뛰어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추 대표는 대학원 재학 시절 8명의 남성 엔지니어와 인터넷 관련 사업을 하면서 일찌감치 사업가의 길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창업 동료들과 불화가 생겼고 “핵심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는 교체할 수 없지만 디자인은 누구라도 할 수 있지 않냐”는 얘기를 듣고는 회사를 나왔다.

화가가 꿈이던 중학생 시절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로 조기 유학을 떠났던 추 대표는 유일한 동양인이란 이유로 ‘왕따’를 당했던 아픈 경험이 있다. 지금은 “고독을 예술로 승화한 덕인지 그때 그린 그림들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며 웃을 여유가 생겼지만 당시엔 상처가 컸다. 그 트라우마 때문인지 창업 멤버들과 겪었던 불협화음이 유난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한동안 사업은 꿈도 꾸지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유난히 강했던 자립심이 그를 다시 창업의 길로 이끌었다.

자신 같은 디자이너가 주축이 돼 새로 설립한 ADI는 삼성전자, 오리온, DHL, KT&G, CJ푸드빌 등 국내외 대기업들의 신규 브랜드 콘셉트를 잡거나 신제품 패키지를 디자인하면서 이름을 알렸지만 큰 수익을 내지는 못했다. 프레젠테이션을 하면 아이디어만 훔쳐 가고 일감은 주지 않는 사례도 종종 있었다. 젊고 경험이 없어서 사기를 당하거나 돈을 떼이는 일까지 있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우리 브랜드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화장품을 아이템으로 삼았다. 화장품업체를 컨설팅하면서 직접 발품을 팔아 용기 공장과 주문 생산업체 등을 누볐던 경험을 살렸다.

젊은 남성들이 화장품을 고를 때 여성들의 평가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점에 착안해 ‘젊은 여성’의 감각으로 마케팅을 했다. 오가닉 소재를 사용해 ‘젊은 탈모’를 막게 하고, 패키지 모양을 위스키 모양으로 디자인하는 등 젊은 남성의 고민과 관심에 집중했다. 이렇게 탄생한 브랜드가 스웨거다.

보디 제품과 헤어왁스 등을 내놓고 온라인과 대형마트 등으로 조금씩 판로를 확대하기 시작했을 때 다시 시련이 닥쳤다. 한 글로벌 생활용품업체가 스웨거에 대해 상표권 취소 소송을 낸 것이다. 추 대표는 우울증까지 겪을 정도로 고생했지만 1년여 소송 끝에 올해 2월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다. 최근에는 싸이가 소속된 연예기획사인 YG엔터테인먼트가 투자를 결정하면서 한류를 타고 해외로 뻗어나갈 꿈도 꾸게 됐다.

추 대표는 이 만큼 달려올 수 있었던 공을 6명의 직원에게 돌렸다.

“최고의 스펙을 가진 친구들이 불안한 회사에 젊음을 맡겨줬어요. 이제 후배들도 창업 상담을 하러 저를 많이 찾아오는데 모범이 될 수 있게 잘해야죠.”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