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게 소나무를 그리는 화가를 만난 일이 있는데 “왜 하필 소나무를 그리게 됐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원래는 산을 그리던 화가였는데 ‘소나무 화가’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소나무를 집중적으로 그리는 이유가 궁금했다.
사연이 있었다. 한때 그는 경기 남양주시 조안리에 있는 버섯재배 농가를 빌려 작업실로 썼는데, 농가의 마당 끝에 아주 예쁘게 잘 자란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인 할아버지가 톱을 들고 와서는 “농사에 방해가 되니 소나무를 베어버려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할아버지는 손에 모자를 쥐고서도 내 모자 어디 갔냐고 찾으시는, 약간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는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 제가 지금 저 소나무를 그리고 있는데 다 그린 다음에 베어내면 안 될까요?”
그렇게 해서 소나무의 목숨은 유예되었지만 어른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려서 화가는 실제로 소나무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할아버지에게 제출할 증거물로 소나무 그림을 그리는 사이에 해가 바뀌었고, 다음 해 봄에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화가 덕분에 소나무 두 그루는 살아남은 것이다.
그 후 화가는 양평으로 작업실을 옮긴 뒤에도 계속 소나무를 그려 소나무 그림으로 개인전까지 열었다. 그리고 전시가 주목을 받으면서 명성도 얻고 작품도 많이 팔렸다고 했다. 소나무의 보은인 셈이다.
그런데 실은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나무에 많은 덕을 보며 살고 있다. 산림과학원 자료에 근거하면 우리는 한평생을 살면서 50년생 잣나무를 기준으로 500그루 분량의 나무를 소모한다고 한다. 나무 한 그루 심어본 적 없는 내가 평생 동안 50년 자란 나무를 500그루나 없애고 간다니 깜짝 놀랐다.
딱딱한 껍질에서 부드러운 연둣빛 새순을 내미는 나무를 바라보며 비로소 제대로 봄이 왔음을 느낀다. 4월이면, 목련 한 그루 심을 마당이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