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경 호남대 교수·사회복지학
노인은 말없이 웃는 얼굴로 외출했다. 그런데 한 달쯤 후 그 노인은 원장에게 찾아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때 그렇게 말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나를 남자로 인정해 준 것만으로도 한동안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행복했다”고.
2년 전 아내와 사별한 후 둘째 아들 내외와 함께 사는 여든 살 A 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A 씨는 교회에서 알게 된 78세의 할머니와 가끔 만나는 사이인데 하루는 둘째 아들이 정색을 하곤 그에게 말했다. “아버지, 비아그라가 필요하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요즘 가짜 비아그라가 많아서 잘못 쓰면 큰일 난대요. 그리고 할머니와 관계를 할 때는 꼭 할머니의 의사를 먼저 물어보셔야 해요.”
이 이야기들은 흔히 80대라고 하면, 성적 욕망이 사라진 무성적(無性的)인 존재로 보는 게 얼마나 큰 편견인가를 말해준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80∼84세 노인의 36.8%가 성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60대 이상 조사 대상자 500명 중 56.1%가 배우자 외의 이성과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고, 36.9%가 발기부전 치료제를, 61.9%는 비아그라를 구입했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성생활을 하는 노인이 늘면서 성인용품과 발기부전 치료제 구매가 매년 10% 이상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도 이성에 대해 관심이 많고, 성적 욕구도 크다는 사실은 양날의 칼과도 같다. 마치 늘어나는 수명이 ‘축복’만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나이가 들면 말끝마다 ‘이 나이에’를 강조하면서 ‘남 눈치 볼 것 없다, 나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노인들이 있는데 이를 좋게 볼 사람은 많지 않다. 솔직하다는 게 항상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만난 40대 후반의 C 씨는 자신이 다니던 서예교실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면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어르신을 공경해야 한다고 배운 그는 서예교실에 오는 60, 70대 남자 어르신들께 웃으며 인사도 하고 커피도 타 드리는 등 친절을 베풀었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서예반의 남자 노인 7명 중 5명이 “나랑 사귀자” “데이트 하자”고 직접 말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심지어 “성관계를 가질 수 있냐”고 묻기도 했다.
결국 C 씨는 “아니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러세요?”라며 심하게 화를 냈다. 그랬더니 남자 노인들은 한결같이 “당신이 먼저 웃으면서 잘해주기에 혹시 생각이 있나 하고 말해 본 것이야”라면서 “아니면 말고…” 식으로 꼬리를 내렸다고 한다. 심지어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되지, 뭘 그렇게 화를 내나. 어른한테 감히…”라며 야단치는 노인도 있었다고 한다.
요즘 줄줄이 이어지는 성폭력, 성희롱, 성접대 사건들로 온 세상이 시끄럽다. 그러나 그게 잘나가는 일부 정치인이나 연예인, 인권운동가 혹은 사이코패스같이 끔찍한 범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노인 성범죄 역시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지킴이를 해온 66세 노인이 어린 여학생들을 성폭행해 왔다는 뉴스에서부터 한 마을에 사는 60, 70대 노인들이 40대 지적장애 여성을 번갈아 가며 성폭행했다는 충격적인 기사를 기억할 것이다. 특히 자기방어 능력이 없는 어린이나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아는 할아버지’의 집요하고 지속적인 성범죄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젊고 건강한 노인도 증가하는 요즘, 성적인 에너지를 어떻게 바람직하게 발산하고 활용할 것인가 하는 건 매우 중요한 노년의 과제다.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며 ‘고상하게’ 놀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이 들수록 화려하고 다채로운 일상을 만들 필요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것으로만 여기던 성적 욕구를 잘 통제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인생의 말년을 성범죄자로 보낼 수도 있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 성추행이나 성희롱, 성폭력에 관한 법도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서울의 자치구들이 실시하기 시작한 노인 대상 성교육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이유다.
100세 시대란, 남자의 입장에서 보면 여자와 사이좋게 지낼 줄 알아야 하는 시대이다. 단, 그보다 먼저 세상이 크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랫동안 여자들이 들어왔던 말, “여자들이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을 이제는 남자들이 할 차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