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음악 찾아 떠난 유학, 운명처럼 재즈가…”
첫 직장은 스물셋의 나를 오래 붙들지 못했다. 의류회사 홍보실에서 카피를 쓰는 일이었다. 8개월이 지나도록 손에 붙지 않았다. 사표는 던졌지만 뾰족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백수 생활은 1년 가까이 길어졌다.
이때 친구가 권했다. “노래 잘하니 가수 한 번 해봐.” 망설였다. 어릴 때부터 뮤지컬 배우인 어머니를 보며 자랐기에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친구는 대학 시절 장난삼아 만든 데모 테이프를 ‘지하철 1호선’의 제작자 김민기 학전 대표에게 보냈다. 1994년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내가 뮤지컬 배우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음악의 문이 열리니 ‘나의 음악’을 찾아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이듬해 프랑스 재즈학교(CIM)로 떠났다. 재즈라곤 들어본 적도 없었지만 음악의 뿌리라고 하니 바닥부터 다지자는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