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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위자크 비자금 실토… 올랑드 “악!”

입력 | 2013-04-04 03:00:00

스위스 계좌 부인하며 3월달 사임
뒤늦게 “20년간 계좌 보유” 시인… ‘탈세와 전쟁’ 佛좌파정부 치명타




고위 공직자의 뻔뻔한 거짓말이 프랑스 정계를 뒤흔들고 있다. 문제의 인물은 제롬 카위자크 전 프랑스 국세·예산장관(61).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 보유설에 반발하며 지난달 사임했던 카위자크 전 장관이 2일 “20년 동안 해외에 계좌를 보유한 게 사실”이라며 그동안 거짓말을 했다고 실토했다.

▶본보 2012년 12월 8일자 A14면… “佛 탈세 잡는 장관이 해외 탈세” 파문


그는 “거짓말 소용돌이에 사로잡힌 것을 후회한다”며 “대통령, 정부와 의회, 유권자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이어 “스위스 계좌에 남아 있던 60만 유로(약 8억5900만 원)는 프랑스 계좌로 옮기도록 했다”고 말했다. 최근 4개월간 언론과 야권에 “중상모략을 중단하라”고 외쳤던 스타 정치인의 비참한 마지막이었다. 그는 장관 재직 시 사회당 정부의 ‘탈세와의 전쟁’을 주도했고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부의 축적을 강력히 비판해 왔다.

카위자크 전 장관은 이날 탈세 혐의로 기소됐다. 혐의가 인정되면 징역 5년과 37만5000유로의 벌금이 가능하다. 외과 의사인 카위자크는 1993년 피부과 의사인 부인과 컨설팅회사를 차려 제약회사를 상대로 큰돈을 벌었다. 그는 이 돈의 상당 부분을 스위스 은행에 숨기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카위자크 스캔들’은 지난해 12월 초 인터넷매체 메디아파르가 “카위자크가 UBS은행에 오랫동안 계좌를 갖고 있다가 하원 재무위원장이 되기 전인 2009년 스위스를 몰래 방문해 계좌를 폐쇄하고 UBS 싱가포르 지점 계좌로 돈을 옮겼다”고 폭로하면서 불거졌다. 2000년대 초 카위자크 의원의 지역구 내 한 조합에 45만 유로의 세금을 추징했다가 카위자크의 개입으로 이 조치가 취소된 뒤 한직을 떠돈 한 세무공무원이 모은 세무 자료가 출발점이었다.

메디아파르는 2000년 말 카위자크 당시 의원이 재산관리인과 나눈 휴대전화 통화 녹취록과 음성파일도 공개했다. 이 통화에서 카위자크는 “스위스 UBS에 계좌를 연 게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이 파일을 언론에 전한 사람은 과거 카위자크의 지역구 정적. 복수를 한 것이었다.

그러나 카위자크는 오히려 메디아파르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결백을 믿는다”며 두둔했다. 카위자크는 지난달 검찰이 탈세 의혹에 대한 정식 조사에 착수하자 “중상모략이다. 무죄를 증명하겠다”며 장관직을 사임했다. 올랑드 정권 출범 후 첫 장관 사퇴였다.

하지만 카위자크의 거짓말이 드러나자 사회당 정권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올랑드 대통령은 3일 국무회의 직후 긴급 TV방송에서 “프랑스를 분노하게 한 용서할 수 없는 잘못”이라며 “탈세를 한 선출직은 앞으로 공직에 임명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마르크 에로 총리는 “그가 우리를 배신했다”고 말했다. 사회당은 3일 “대통령 면전에서까지 거짓말을 했다”며 카위자크를 출당시켰다. 올랑드 정부의 무능한 정무적 판단과 참모들의 미숙한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녹취록 보도 후 언론은 카위자크의 목소리가 맞다며 장관직에서 사퇴시키고 수사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엘리제궁은 계속 묵살했다. 야당 대중운동연합(UMP)은 “대통령이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지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일 “공무원과 국영기업 임원들은 보유하고 있는 외국 은행 계좌를 말소하고 7월 1일까지 소득 및 재산 신고서를 제출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면직된다”는 내용의 대통령령을 발표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