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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련, 빚 못갚아 중앙본부 건물 경매

입력 | 2013-04-04 03:00:00

北 자금 대주다 627억엔 빚더미… 구성원도 43만명 → 9만명 급감




친북 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가 휘청거리고 있다. 재정난으로 빚을 못 갚아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 구에 있는 중앙본부 건물과 토지마저 지난달 말 경매로 넘겼다. 일본 내외의 영향력도 현격히 줄어들었다. ‘총련의 몰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지지를 표방한 총련은 1955년 5월 결성됐다. 북한과 국교가 없는 일본에서 총련은 북한의 공관 역할을 했다. 일본 정부가 북한과 교섭할 때 창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런 위상을 자랑해온 총련이 건물을 빌려서 사용하는 ‘세입자 신세’가 된 셈이다.

총련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전성기를 맞았다. 당시 ‘군대와 경찰 빼고는 다 갖춘 소왕국’으로도 불렸다. 중앙본부와 지방본부 지부를 두는 등 일본 내 전국적인 조직을 갖췄다. 조은신용조합을 포함해 은행 보험 무역회사 등을 운영하고 학교와 언론출판 기관도 거느렸다.

특히 총련은 교육사업에 주력했다. 현재 일본 전역에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70여 곳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한국학교는 5곳뿐이다. 지방에 사는 재일교포가 자녀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총련이 운영하는 조선학교에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 총련의 영향력이 떨어졌다. 당시 한국 정부는 재일교포(총련계 포함) 성묘단 모국 방문 사업을 벌였다. 총련 인사들이 한국의 발전상을 보면서 한국에 대한 인상이 달라졌다. 반면에 북한의 ‘조국 방문’ 사업에 참여해 북한을 다녀온 총련 인사들은 빈곤한 삶에 대체로 실망했다.

북한으로부터의 자금 지원 요청도 끝이 없었다. 김일성 주석 생일 축하단에 끼려면 500만∼1000만 엔(약 5900만∼1억1900만 원)의 참가비를 내야 했다. 1980년대 북한 정부는 훈장제도를 만들어 1억 엔 이상을 기부한 총련 인사에게 금상을 주고 북한의 도로나 병원에 기부자의 이름을 붙여줬다. 총련계 기업인들에 대한 헌금 요구도 계속됐다. 총련이 627억 엔의 빚 때문에 중앙본부 경매에 내몰린 것도 북한에 과도한 자금 지원을 계속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창립 초기 총련 구성원은 재일교포의 약 80%에 해당하는 43만 명에 이르기도 했지만 2010년 약 9만 명으로 줄었다. 반면에 한국 정부를 지지하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은 약 40만 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북한 국적에서 한국 국적으로 바꾸는 사람들도 매달 20∼30명이다. 총련의 ‘날개 없는 추락’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