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김광석 같은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인 이풍세(박창근 분)가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LP스토리
■ 어쿠스틱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
故 김광석 음악 모티브 콘서트형 뮤지컬
하모니카·통기타 등 배우들이 직접 연주
스토리 최대한 억제하며 23개 명곡 선사
박창근·최승열 꼭 닮은 음색…감동 물결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 빈 방문을 닫은 채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김광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포말처럼 사라져갔다. 애잔한 추억이 ‘싸아아’ 비명을 지르며 모래 속으로 스며든다.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어쿠스틱 뮤지컬’이란 부제를 단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세 편 중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른 작품이다. 지난해 대구에서 막을 올려 호평을 받았고, 여기서 탄력을 받아 5월 19일까지 서울 동숭동 아트센터K 네모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역시 김광석의 음악을 모티브로 한 뮤지컬 ‘그날들’도 4일 대학로뮤지컬센터에서 개막했다. 세 번째 김광석 뮤지컬은 장진 감독이 연출을 맡아 연말께 모습을 드러낼 예정.
김광석의 노래 제목을 그대로 따 온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중대형 극장에서 공연하는 다른 두 작품과 달리 아담하고 소박한 소극장용 작품이다. 배우들이 노래뿐만 아니라 악기까지 연주하는 콘서트 형식으로 구성됐다.
● 드라마를 죽이니 음악이 살아났다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그나마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 뒤로 사라진다), 구석에 세워놓은 통기타, 등받이도 없는 작은 의자 몇 개. 소박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 무대다. 심드렁한 얼굴로 무대를 내려다보던 관객들은 그러나 주인공 이풍세의 입에서 나지막하게 ‘거리에∼’가 흘러나오자마자 순식간에 무장 해제되어 버리고 만다. 어느새 촉촉해진 두 눈은 무대 위의 배우에게 고정되어 있지만, 머릿속에는 또 다른 영상이 한 겹씩 쌓여간다. 하긴, 이 공연 보러 온 관객 중에 김광석 노래에 얽힌 사연 하나쯤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김광석같은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95학번 대학생 이풍세와 몇 명의 선후배들이 ‘블루 드래곤즈’라는 통기타 그룹을 결성해 대학축제에 나가 1등을 한다. 이풍세는 군대를 가고, 제대해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하다 연예기획사 ‘이돈만’ 사장의 눈에 띄어 보이그룹의 멤버가 된다. 그 후 쫄딱 망해서 막노동을 하고, 훗날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블루드래곤즈’ 멤버들이 다시 모여 콘서트를 연다는 것이 이 작품의 스토리다.
● 김광석보다 더 김광석 같은…주연들 음색, 창법 똑같아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는 김광석이 남긴 스물 세 곡의 노래가 등장한다. ‘거리에서’, ‘나의 노래’, ‘어느 목석의 사랑’,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 ‘이등병의 편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사랑했지만’, ‘서른 즈음에’,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변해가네’ 등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저며진다. 김광석의 애절한 하모니카, 오케스트라처럼 울리던 기타, 폐부를 한껏 죈 뒤 목구멍을 통해 일거에 쏟아내는 듯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울린다.
이 뮤지컬을 좀 더 재미있게 관람하기 위한 팁 하나. 이풍세 역을 맡은 가수 박창근과 배우 최승열의 음색과 창법은 김광석을 복제한 듯 빼닮았다. 노래를 듣다보면 종종 소름이 돋는다. 여러 역을 숨 가쁘게 번갈아 맡는 멀티맨 역의 박정권, 맹상열의 감초연기는 각자의 추억 속에 빠져든 관객들을 다시 무대로 돌아오게 해준다.
■ 양기자의 내 맘대로 평점
감동★★★☆ (애잔한 추억이 몰고 오는 감동의 힘!)
웃음★★★☆ (폭소극까진 아니지만 웃기는 장면이 꽤 있다)
음악★★★★ (스물세곡에 모두 별 네개를 박아주고 싶다)
무대★☆☆☆ (소박한 밥상)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트위터 @ranbi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