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동반 모임이 있던 날, 먼저 도착한 남자가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왜 이렇게 늦어? 어디야?” 아내가 엉뚱한 대답을 했다. “나, 거기 잘 모른단 말이야.”
모임은 즐겁게 끝났다. 아내 역시 다른 부인들과 잘 어울린 것 같았다. 그런데 집에 도착할 즈음 사소한 일로 싸움이 시작됐다. 남편은 모임에서 뭔가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내를 달래가며 한마디씩 꿰어 맞춘 끝에 ‘전모’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내는 예전부터 친구 부인 가운데 ○○ 씨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기색이었다. 성격이 안 맞는 사람이겠거니 짐작했었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알고 보니 ○○ 씨가 모임 때마다 아내의 약점을 거론했다는 거였다. 아이가 없다는 약점. 부부가 애를 쓰는 중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왜 애를 안 낳느냐”고 물어보는 등 난처한 이야기만 집요하게 화제로 올렸다는 것.
그동안 아내가 남편에게 자기 입장을 전혀 드러내지 않은 건 아니었다. 몇 차례에 걸쳐 ○○ 씨라는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넌지시 전했다. 여자들 특유의 ‘남들이 그러는데’ 방식으로. 모임이 있는 날이면 “속이 좋지 않다”거나 “어딘지 잘 모른다”며 불참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상당수 여자가 거절에 이런 방식을 구사한다. “○○ 씨를 마주하는 게 불편하기 때문에 모임에 나가고 싶지 않다”고 콕 찍어서 말을 하는 여자는 많지 않다. 여자들이 에둘러 말하는 것은 오랜 문화의 산물이다. 오래전부터 여자는 ‘나서지 않으며 뒤에서 희생하는 존재’로 살아왔다. 교육과 관습, 문화 등이 여성은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옳다는 가치를 재생산해왔다. 여자들은 자기 위주로 선택을 할 경우, 이기적인 행동에 실망한 남자가 변심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까지 갖게 되었다. 그래서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기도 하지만, 시몬 드 보부아르의 말처럼 여자로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여자들의 에두른 표현은 상대의 관심을 위해 나머지 절반을 남겨놓는 측면도 있다. 여자는 웬만해선 한 번에 정답을 알려주는 법이 없다. 상대의 입에서 원하는 바가 나올 때까지 스무고개 게임을 멈추지 않는다. 때로는 200고개 혹은 2000고개까지 각오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표정이나 행동을 유추해보면 여자들의 에두른 표현 속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이런 데 예민한 사람들이 광고제작사나 영화사, 기업 마케팅 관계자들이다. 그들은 여자들의 에두른 표현 속을 꿰뚫어 보고 마음속에서 대박 광맥을 찾아낸다.
한상복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