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3’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방한… 영화 홍보행사 24시간 뒷얘기
4일 팬미팅 행사에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팬들의 모습. 팬들 앞에는 아무리 밀어도 넘어지지 않게 제작된 특수 바리케이드가 있다. 월트디즈니컴패니코리아 제공
“아까부터 자리 잡고 기다렸단 말이에요.”
교복 차림의 여학생들이 고함을 치자 사다리에 올라선 사진기자들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3일 오후 9시 김포공항 입국장. 팬 600여 명과 사진기자들은 영화 ‘아이언맨3’의 홍보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주연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하 ‘로다주’·한국 팬들이 부르는 애칭)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기자들이 사다리를 펴고 올라서자 뒤에 있던 팬들이 항의하는 상황이었다.
‘펜 달라’ 손짓에 ‘휴∼’
‘아이언맨3’는 올해 할리우드 최대 기대작으로, 미국보다 일주일 앞선 25일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로 개봉한다. 영화 홍보를 위한 로다주의 월드투어도 서울에서 시작한다. 영화사가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초대형 프로젝트’의 입소문을 일으킬 장소로 한국을 선택한 셈이다. 그간 이 시리즈의 한국 흥행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아이언맨이 나오는 영화 세 편(‘아이언맨’ ‘아이언맨2’ ‘어벤져스’)은 국내에서 관객 1580만 명을 모았다.
국내 홍보를 총괄하는 월트디즈니컴패니코리아는 지난해 9월부터 극비리에 로다주의 방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디즈니코리아가 고용한 대행사만 해도 인터넷 담당, 무대 담당, 광고 담당 등 6곳이다.
로다주의 입국 시간과 비행기 편은 비공개였다. 그러나 트위터에서는 ‘인천이 아니라 김포, 전용기, 오후 9시 50분’이라는 정보가 돌았다. 배급사 관계자는 “팬들이 우리보다 정보가 더 빠르더라”며 “공항을 통해 파악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입국 게이트부터 대기 차량이 있는 곳까지 40m 이동에 배치된 경호 인력은 26명. 경호업체 ATSS의 함상욱 실장은 “팬들의 안전도 중요해 이 인원을 배치했다”며 “어지간한 할리우드 스타라도 경호원은 보통 4명만 붙는다”고 설명했다.
취재진 400명 기자간담회
로다주의 내한 일정은 분 단위로 쪼개져 있었다. 영화 개봉 뒤 관객에게 제공할 경품에 사인할 자투리 시간까지 미리 정해 놨다. 공교롭게도 자신의 생일인 4일 하루 동안 그는 최대한 많은 한국 기자와 팬들을 만나고, 최대한 많이 입에 오르내려야 했다. 디즈니코리아와 대행사 직원들은 3일 로다주의 호텔 수속을 마친 뒤 밤중에 행사 브리핑을 하고, 팬미팅 장소인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와 기자간담회 장소인 여의도 콘래드호텔을 오가며 무대 설치팀과 함께 밤을 새웠다. 4일 입을 ‘행사복’은 3일 출근할 때 이미 가방에 들어 있었다.
올해 상반기 최대 영화홍보 이벤트에는 여러 가지 딜레마가 있었다. 스타의 안전이 최우선이지만 팬들은 ‘스킨십을 듬뿍 받았다’고 여겨야 한다. 관련 기사가 쏟아져야 하지만 영상이 노출되면 안 된다. 영화가 아직 후반 작업 중이라 시사회를 열 수 없다(―10점). 하지만 배우 로다주가 영화 캐릭터 ‘토니 스타크’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이미지가 겹치고 쇼맨십도 풍부하다(+10점).
간담회에 참석한 기자는 모두 400여 명. 로다주는 말춤을 춰 보일 정도로 매너가 좋았지만 간담회 시간은 40분이었다. 배우가 정성 들여 답할수록 질문의 수는 줄어든다. 제아무리 영화 식견이 높아도 ‘교과서적인 질문’부터 던져야 한다. 속보 경쟁 때문에 배우의 답변은 거의 생중계되다시피 했다. 답변 하나, 사진 한 장이 각각 기사 한 건이다. 오전 11시에 기자간담회를 시작했는데 7분 뒤 첫 기사가 나왔다.
오후 3시까지는 방송사 연예프로그램들과의 일대일 인터뷰 시간이다. 매체별 할당 시간은 20분. 어눌한 한국어로 프로그램 이름을 부르며 “사랑해요”라는 멘트를 녹화하는 게 이때다.
세 끼 거르며 행사 준비
같은 시간 타임스퀘어에서 디즈니코리아 김태영 과장은 로다주가 레드카펫 위를 걸어가다 멈춰서야 할 지점에 카메라 모양의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사진이 잘 나올 장소를 고르는 것이다. ‘좋은 목’을 차지하기 위해 아침부터 기다린 팬들은 옆에 설치된 특수 바리케이드 밖에서 김 과장에게 “여기, 여기”라며 괴성을 질렀다. 스티커가 한 장씩 붙을 때마다 환호와 한숨이 교차했다. 현장에서는 그런 과정도 일종의 놀이였다. 왕복 지하철비와 스마트폰만 있으면 몇 시간을 그렇게 놀 수 있고,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자랑할 수 있는 ‘인증 샷’도 찍을 수 있다.
오후 8시에 시작한 팬미팅 행사는 극중 토니 스타크의 회사인 ‘스타크인더스트리’의 한국 지사 설립을 콘셉트로 꾸며졌다. 홈페이지에서 진행한 퀴즈 이벤트로 뽑은 열성팬 5명을 로다주가 스타크인더스트리코리아의 경영진으로 임명했다. 어린아이 생일날 ‘용사’ 행세를 하는 배우가 와서 “같이 지구를 지키자”고 말하는 격이지만 배우도 팬도 모두 맡은 역을 즐겁게 연기했다.
로다주가 ‘한국 경영진’에 배지를 달아준 뒤 포옹을 하거나 함께 춤을 추는 동안 바리케이드 밖 팬 5000여 명도 대리만족을 느꼈다. 문자메시지로 질문을 받아 답하는 시간 중 ‘로다주라는 애칭이 마음에 드느냐’는 물음에 그가 “환상적”이라고 답하자 건물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터졌다. 3일 오후 10시부터 24시간 동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는 네이버에 1244건 올라왔다. 그동안 행사준비 스태프 150여 명 중 상당수는 식사를 한 끼도 먹지 못했다. 커피만 잔뜩 마셨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