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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뒷談]이 봄, 협동조합 바람이 분다

입력 | 2013-04-06 03:00:00

23인의 퀵, 목숨걸고 달려도 웃음 짓는 사연은




“우리가 퀵서비스 업계를 바꿔 보겠다.” 업계의 불합리한 관행을 바꾸고자 오토바이 운전사 23명이 1인당 10만 원씩 모아 올해 1월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협동조합은 영리보다 조합원의 권익과 복지를 우선으로 하는 법인. 지난해 12월 협동조합 설립 기준이 완화되면서 하루에 7개꼴로 조합이 설립될 정도로 붐이 일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목숨 걸고 달려야죠. 식사는 물론이고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어요. 기사들끼리 힘을 합쳐 공공연한 착취와 불합리한 구조를 바꿔보고 싶습니다.”

2일 저녁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한 철제상가. 오토바이를 타고 검정 점퍼를 입은 라이더들이 부릉부릉 굉음을 내며 하나둘 나타났다. 이들이 모인 곳은 ‘한국퀵서비스협동조합’ 사무실. 1월 퀵서비스 기사 23명이 1인당 10만 원씩 출자해 만든 작은 조합이다.

이들은 경제적 권익 향상을 위해 뭉쳤다. 업체들의 난립과 출혈경쟁으로 수수료 구조가 터무니없이 불리했기 때문. 1만 원짜리 배달을 하면 회사에서 수수료로 2300원을 떼어 가고, 주문을 받기 위한 프로그램 사용료, 휴대전화요금, 기름값, 파손보험료 등을 내면 손에 쥐는 건 5000원 남짓. 생활비를 벌려면 더 많이 싣고 더 빨리 목숨 걸고 달려야 한다.

조합은 퀵서비스 연락시스템을 직접 운영해 기사의 몫을 늘리고, 권익도 보호하기로 했다. 수수료를 업계 관행인 23%에서 15%로 낮췄다. 마음 맞는 기사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가입 의사를 밝힌 예비조합원이 80명으로 늘었다. 조합원 봉병갑 씨(54)는 “기사끼리 회사를 만들어 주인이 되면 상생하면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며 “경영교육 친절교육 등을 제대로 받아 일반 업체와 차별화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협동조합 바람이 뜨겁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이후 4개월 만에 서울 233개를 비롯해 전국에서 협동조합 850개가 설립됐다. 하루에 7개꼴로 새 조합이 만들어지는 셈. 협동조합은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 생산적 복지를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시장경제 보완재’ 협동조합 열기

‘득점기계’ 리오넬 메시가 뛰고 있는 스페인 축구팀 ‘FC 바르셀로나’, 키위의 대명사인 뉴질랜드의 ‘제스프리’, 오렌지 등 과일로 유명한 미국의 ‘선키스트’, 세계 최대의 뉴스통신사인 ‘AP통신’…. 나라와 분야는 다르지만 각자 최고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공통점은 또 있다. 모두 주식회사가 아니라 협동조합이라는 것.

1844년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협동조합은 170년간 세계 전역에서 일반 영리기업과 공존하며 발전해왔다. 새롭지 않은 모델인 협동조합이 최근에 다시 주목받은 것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문. 효율성을 자랑했던 미국과 유럽의 기업들이 금융위기의 거센 파도에 속절없이 휩쓸려갔다. 가혹한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협동조합도 비틀거렸지만 상대적으로 잘 버텨냈다. 스페인의 대표적 협동조합으로 금융, 제조, 유통업 등을 운영하고 있는 몬드라곤은 스페인 기업 26%가 도산하는 경제난 속에서도 1명도 해고하지 않았고 오히려 신규채용을 늘렸다.

협동조합이 시장경제의 폐해를 치유할 새로운 모델로 떠오르면서 유엔은 2012년을 ‘세계협동조합의 해’로 선포했고, 우리나라도 지난해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됐다. 과거에는 생협 등 일부 영역에서 300∼1000명 이상이 모였을 때만 조합을 세울 수 있었지만 이제는 금융·보험을 제외하고 업종에 관계없이 5명 이상이 모이면 조합을 만들 수 있다.

기본법상 협동조합은 ‘재화 또는 용역의 구매 생산 판매 제공 등을 협동으로 영위함으로써 조합원의 권익을 향상하고 지역사회에서 공헌하고자 하는 사업조직’으로 정의된다. 비슷한 일을 하거나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일종의 ‘회사’다. 하지만 조직 구성, 지향하는 목표는 주식회사 등과 크게 다르다.

주식회사가 영리를 최우선 목적으로 투자금을 모아 만든 조직이라면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권익 향상’과 ‘지역사회 공헌’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이다. ‘1주 1표’ 원칙에 따라 최대주주가 사실상 지배권을 행사하는 주식회사와 달리 협동조합은 ‘조합원 1인 1표’로 운영되는 조합원 공동 소유의 형태다.

정부는 협동조합을 통해 소액·소규모 창업이 활성화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일반기업에 비해 장기 생존율도 높아 고용안정성도 높일 수 있다. 협동조합 형태의 노인 돌봄, 보육 서비스 등이 많이 만들어지면 서비스 제공자나 복지 수혜자 모두에게 유리한 ‘생산적 복지’도 가능해진다. 김명중 기획재정부 협동조합운영과장은 “지속적 저성장으로 서민생활이 어렵고 청년실업난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협동조합은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 질 높은 생산적 복지를 이루기 위한 핵심 경제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협동조합 지원에 팔을 걷었다. 가장 적극적인 지자체는 서울시다. 서울시는 향후 10년간 협동조합 수를 8000개까지 확대하고 경제규모를 지역 내 총생산(GRDP)의 5% 규모인 14조3700억 원까지 늘릴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다음 달부터 협동조합 종합지원센터를 운영하고, 민·관 협력으로 협동기금을 조성해 신규 창업 및 운영자금이 필요한 협동조합기업에 장기 저리로 융자 지원하는 등 다양한 육성책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014년 2월 문을 연 ‘카페오아시아’에선 결혼이주여성 3명이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4층의 ‘카페오아시아’는 다문화가족을 위한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포스코와 세스넷이 후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소상공인도, 농촌도… 협동조합 전성시대

5명 이상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세울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협동조합이 등장하고 있다. 공동육아, 대리운전, 전통시장, 소상공인, 고령근로자, 도시농업, 북카페 등 시민들의 일상생활 전반에 고루 퍼져 있다.

가장 적극적인 것은 대기업의 공세에 힘에 부친 소상공인들이다. 2월 소규모 주방가구 업체들은 ‘한국인의 부엌가구협동조합’을 만들고, 공동으로 사용할 케이쿱(K-Coop)이라는 가구 브랜드도 출시했다. 내수불황, 건설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어려운데 자금력을 갖춘 대형 주방가구업체들이 저가물량 공세로 나오면서 10년 새 일감이 반 토막이 났다. 오영선 조합이사장(48)은 “이대로 무너질 순 없다는 절박감에서 의기투합했다”며 “뭉치면 대량구매로 단가를 떨어뜨릴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창립조합원으로 중소규모 사업자 20명이 참여했다. 예비조합원도 32명에 이른다. 이달부터 본격적인 전국 네트워크 구축에 들어갈 예정이다. 공동구매와 공동마케팅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생각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도 열고 독자적으로 제품도 개발할 생각이다. 160개 업체를 확보하면 월 5000만 원씩 연간 1000억 원 정도 매출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농업 분야에서도 협동조합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다문화 가정이라고 언제까지 지원만 받겠습니까. 아이들에게 당당한 아빠가 되기 위해 변하기로 했습니다.”

2일 3300여 m²(약 1000평) 비닐하우스에서 깻잎을 출하한 김영섭 씨(47)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난달 말 협동조합을 결성한 뒤 첫 성과다. 김 씨 등 충남 금산군에서 베트남 필리핀 중국 일본 등지에서 부인을 맞이한 남편 14명은 지난해 말 ‘금산다문화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자본금 1000만 원을 갖고 올해 깻잎농사와 홍삼사업을 펼친다.

조합이사장인 김 씨는 2011년 7월 다문화 배우자 자조모임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봉사활동으로 시작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생산적 자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협동조합을 준비했다. 깻잎 농사와 함께 금산의 특산물인 인삼을 홍삼으로 가공해 협동조합 상표(다홍이)로 해외에 팔기로 했다. 5, 6월엔 베트남에 첫 매장을 연다. ‘처갓집 대리점’인 셈이다. 각지에 무역시스템이 구축되면 향후 다문화 2세들도 외갓집 나라를 무대로 활동할 수 있다.

김 씨는 “부인들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등에 능통하기 때문에 부인들을 활용한 다문화어학원도 구상하고 있다”며 “전국 10여 개 다문화 협동조합과 협력해 특산물 네트워크 등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막연한 환상 가지면 낭패

협동조합이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부 진보진영에서 해석하는 것처럼 자본주의를 대체할 대안이나 만병통치약으로 보는 것은 과도한 기대라는 지적도 나온다.

협동조합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스테파노 자마니 이탈리아 볼로냐대 교수는 “협동조합은 경제영역에서 민주주의를 실현시켜 줄 모델이지만 이윤을 창출해야 할 사업모델로선 꼭 적합하다고 할 수 없다”며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업종에서는 효율성이 높은 주식회사가 필요하고, 지역밀착형 소매 사업이나 영세상인 협력 사업은 협동조합이 적합해 ‘전략적 상호보완관계’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막연한 환상을 좇아 조합을 설립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본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조합을 신고하거나 불과 수십만 원의 자본금만 갖고 막연히 지원을 기대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가치를 함께 추구해야 하는 협동조합이 일반기업 운영보다 훨씬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한다. 강승구 재단법인 행복세상 협동조합지원센터장은 “협동조합도 돈을 벌어야 존립할 수 있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사업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렇다고 단순한 경제모델도 아니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가치를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내부 갈등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금 조달도 어려운 문제다. 조합비로 출자금을 만들지만 사업할 정도의 돈은 안 된다. 장승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협동조합은 주식을 발행할 수 없어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쉽지 않고, 기업심사에서도 낮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 은행대출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정부가 직접 자금을 지원하는 등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독이다. 정부는 간접지원을 원칙으로 하되 중소기업 정책자금, 신용협동조합을 활용해 자금조달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강 센터장은 “사회적 기업의 경우 정부의 인건비 지원이 끊어진 뒤 망하는 경우가 많다”며 “협동조합의 기존정신인 자주·자립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법률지원, 컨설팅 등 경영 인프라를 지원하고,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도록 사회적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red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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